최악의 순간에서 최고를

할 말 없으니 들어가

중학교 시절에는 '하라는' 공부를 이냥 저냥 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공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극심한 생리통으로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라'는 식의 전근대적인 방침은 나에게 반감밖에 사지 않았다. 또한 과외를 통해 부족한 공부를 메우고 싶어도, 합리적인 이유 없이 단칼에 거절당했다. 막상 다른 학생은 야자를 빼고 과외를 하도록 배려해줬으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후자의 예는 핑계였던 것 같다. 螢窓雪案(형창설안)이라고 의지가 있는 시람은 상황이 악해도 반딧불이 비치는 창문가에서, 혹은 펑펑 내리는 눈의 빛을 이용해서 공부한다.


여하튼 시간 때우기 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학업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일 수밖에.




고등학교 삼 학년 때 느낀 차별은 최고조에 달했다. 담임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편애했었다.


한 번은 대입 수시 원서 건으로 상담 신청을 했었다. 선생님은 점심 먹고 나서 교무실에 들리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약속대로 식사 후에 교무실로 방문했다.


그분은 전화통화를 하고 계셨다. 앉아서 기다리라 하시기에, 의자에 앉아 내 차례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오 분,

십 분,

십오 분,

이십 분..


시곗바늘은 야속하게도 수업시간을 향해 전진해갔다. 그와 정비례하듯 내 긴장감은 점점 최고조에 이르렀다.


내 기억으로 그분은 5교시가 시작되기 대략 오 분쯤에 전화를 끊은 것 같다. 그러고는 대뜸


너랑 할 말 없으니 돌아가.
그리고 넌 간호학과 못 가.

'내가 저 두 마디 들으려고 귀한 시간을 투자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 통화하다가 늦었으니 미안하다. 다음에 상담하는 것이 어떨까?' 식의 따뜻한 말을 들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건 상당히 비상식적인 처사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에 항변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알겠다고 말하고는 힘 없이 교실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내가 대기하는 동안 함께 통화하셨던 존귀한 분은 전교회장의 아버지로, 직업은 우체국장이라고 한다.




직업 좋은 부모를 가진 사람에게만,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게만 양질의 상담을 제공하는 교사는 교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몇 년 전 히트를 쳤던 유병재의 청춘페스티벌 강연 내용처럼



살아가면서 집안 배경이나 학벌을 따져가며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대상이 누가 됐든지 간에.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반드시 간호학과에 진학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나같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은 사람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비록 좋지 않은 성적에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오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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