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우리 지역에 티오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년 시험 준비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되게 마음 아플 거 같다. 수많은 수험기간 동안 나는 누군가의 스쳐 지나가는 말도 비수처럼 꽂혔던 게 생각난다.
그런데 티오가 없다, 이거는 내가 들은 말에 비해 넘사벽으로 사람 마음을 헤집어놓는 말 아닌가. 솔직한 말로 내 일은 아니지만 내 일처럼 마음이 아린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그 고통을 알기에.
수험생활 중 가장 힘든 건, 내 의지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는 거다. 야속하게도 그런 일은 연달아 발생한다. 도미노가 무너지듯 순식간에 일어나는지라 무너진 멘털은 좀처럼 회복이 안 된다.
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군인이 왜 관심병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군인 생활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공감을 못해서 죄송하다. 하지만 수험생활을 해보니 알겠더라. 통제된 상황에서 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니 사람이 돌아릴 법도 하더라. 평소에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는 일도, 수험생활이라는 족쇄가 붙으니 밑도 끝도 없이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더라.
애인과 헤어지는 사소한 것부터,
가족의 사고,
나의 질병,
법적 다툼, 등등...
슬픈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걸 계속 끌고 간다고 해서 벌어진 사건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일을 계기로 '애인에게 차인 불쌍한 수험생=나'라는 자기 연민에 빠지면 수험생활에 실패하는 요인이 된다. 내가 시험에 떨어진 이유도 이런 부분이 가장 컸다.
수험생활이 계속될수록 사소한 것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실제로 본인의 수험 스트레스를 악플로 해소하는 바람에 스스로의 인생을 좀먹는 사례가 왕왕 있다. 매우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지만 '불쌍한 나'라는 타이틀에 사로잡혀서 '공무원 시험으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불쌍한 나라는 수험생 좀 구제해 주십사..'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이 합의를 해주고 싶을까. 오히려 '악플 다는 인성에 무슨 공무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엿 먹여주고 싶을 걸.
아이러니하게도 수험생일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의 24시간이 오로지 공부에 특화될 수 있는지만을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수험생활뿐만 아니다. 살면서 남과 비교하여 나를 불쌍하다는 틀에 가두면 나 자신만 한없이 초라해진다. 나는 불쌍한 게 아니라 그 부분에 있어 부족한 거다. 부족한 부분은 힘을 써서 보충하면 된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힘을 쓸 수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누구나 노력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실천을 안 할 뿐이지. 설사 부딪혔는데도 잘 안되면 본인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장점을 찾아가면 된다.
그러면 남이 잘돼도 배 아프지 않고, 나 자신이 불쌍하지도 않게 된다. 마음이 건강해져서 수험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인생에도 플러스다.
티오가 없다는 말에 흔들릴 멘털이라면 시험을 접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맞다. 포기도 용기다. 하지만 절실하다면 그 누가 어떠한 말로 나를 흔들어놓아도 나만의 뚝심을 지켜가야 한다.
이게 머리로는 납득이 가는데 실천으로는 잘 안 된다. 그럼 연습장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각각 적어서, 전자에 집중하도록 시각화를 하면 좋다. 사소한 의식 전환이 긍정적인 행동을 낳는다는 걸 나는 믿는다. 이게 쌓이고 쌓여 습관이 되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산 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