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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소방이나 준비해볼걸

예전에 학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시험이 두 달가량 남았을 때일 거다. 예민함이 최고조에 이르고ㅡ티는 내지 않으려 했지만ㅡ그냥 내 뇌는 하루 종일 수험생활에 취해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소방학 문제 풀 거 프린트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일행(일반행정직) 준비하던 남자들 무리가 몰려왔다.


'저 사람들은 항상 셋이서 몰려다니더라.'

뭔가 거슬렸다. 내 시야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니, 내가 먼저 사라져 주는 게 낫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프린트의 양.. 후자는 무리다. 최대한 클릭을 빨리 할 수밖에 없다.


남이 뭘 하는지 신경 잘 안 쓰는 편인 데다가 학원에서는 주변 환경에 대해 눈감고 귀 막고 살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는데, 무의식적으로 그런 느낌이 든 거 보면 그들의 평소 행동이 어지간히 내 반경 안에 들었나 보다.


그러다 그중 한 명이 뜬금포로 하는 말.


"아, 나도 소방'이나' 준비해볼걸 그랬나. 그런데 국어가 폐지돼서."


똑똑히 들렸다. 소방'을' 준비한다는 것도 아니고, 소방'도' 준비한다는 것도 아니고, 소방'이나' 준비한다는 건 내 준비 직렬에 대한 비하 의도가 깔려있었다.

무엇보다도 작년에 학원에서 소방 준비하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사실 초반에 학원 다닐 땐 나 말고 00년생 남자도 있었는데 마지막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뭔가 나를 저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실제로 해보고나 말하던가. 체력도 쳐야 되는데 체력 돼? 남자는 삼십 점만 넘으면 되긴 하다만. 그렇다고 마냥 쉽지만은 않을 텐데. 그리고 니들이 내 사정 알아? 내 산전수전 공중전 알지도 못하면서 말은 쉽지.


결국엔 일행 준비하시다 군무원 시험도 치시는 거 같던데.. 잘 되셨으면 좋겠네요. 비꼬는 건 아니고 진심입니다. 사실 그 순간엔 욕 나왔지만 덕분에 공부할 이유가 생겼었으니까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비록 소방'이나'의 그 '소방'이지만.. 많이 늦긴 했지만.. 수험생활 탈출한 제가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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