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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이러니

공장에서 일하는 나.

S사 직원 온다고 일 똑바로 하라며 뒤에 일하는 아주머니가 나한테 야!!!! 이런다. 일도 안 알려줬으면서 왜 윽박부터 지르지. 아주머니가 뭔데 저보고 야라고 하는지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 부모님도 나한테 야라고 안 그러는데. 참고 일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일이 급하니까 그냥 아무 말 안하고 일했다. 다음에도 저러면 안 참아야지, 라며 넘기는데 진하게 현타가 온다. 공무원 시험 오랫동안 준비하느라 돈 많이 탕진한 죗값이라 생각해야겠다. 그깟 칠만원이 뭐라고 참 더럽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가 만든 핸드폰 잘 쓰려나 이런 생각으로 참고 일했던 건데 가끔 불쑥불쑥 화가 난다.


병원에서 일하는 나.

스물세살 사회초년생 월급 세후 360만원. 돈 많이 받는다는 대학병원 때려치우고 중소병원 일하는 내 사정 모르면서 환자들은 나한테 돈만 밝히는 년이랜다.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위해 일한 것밖에 없어요. 내가 돈 밝힐 거 같으면 막말로 다방 가서 일해야 되는 거 아닌가? 교차로 보니까 한 달 월급 천만원이라던데. (일부러 본 건 아니였다. 나도 모르게 보였다) 병원에서는 돈도 더 안주면서 여덟시 반까지 안오면 사람 탈탈 터는 걸요? (아홉시 진료 시작) 나는 돈이 아니라 내 삶이 중요해서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안쓰고 유명 대학병원도 때려치운 건데 왜 남한테 이런말까지 들어가며 일하는건가. 내 이런 억울함은 누가 알아주는가. 가족한테 말해도 전혀 알아주지 않는다.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나.

나는 여전히 병원 노동자 출신이다. 하지만 합격증 하나로 졸지에 사명감 넘치고, 지덕체 다 갖춘 사람이 되어버렸다. 인터넷에서는 소방공무원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그러고, 너도나도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을 해야한다 그러고, 여튼 그렇다. 내가 여태 현실에서 들었던 말과 백팔십도 반대로 말한다. 9급 공무원 중에서 소방직이 돈 제일 많이 받는데, 그 누구도 돈만 밝혀서 소방공무원 준비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맞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그만 왈가왈부했으면 좋겠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간호사는 여러 사람에게 모진 말을 많이 듣는데 나에겐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직업이다. 하지만 내 영원한 주홍글씨는 간호학과이자 간호사이다. 그리고 공장 생산직 노동자이기도 하다.


요즘 너도나도 부캐를 만드는 세상인데 나는 나도 모르게 부캐를 만들어버렸다.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다들 직업에 차별을 두지 말고 인간답게 잘 대해줬으면 좋으련만. 졸지에 세 가지 업에 인생을 걸치게 됐는데 거기에 따라 차별을 받는다. 나는 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피부에 직접 와닿으니 굉장히 씁쓸하다.


하지만 저 셋 모두 다 가장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내 손기술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거에선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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