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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간호사에게 삶의 낙이란?

간호사 생활 정말 힘듭니다. 제 페이지에 적힌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제 글이 부정적이라 보기 싫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사실을 기록했기에 이게 현실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간호사라서 행복하다는 식의 허황된 희망을 심어주고, 이상적인 내용의 글을 작성할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힘든 것을 애써 포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지껏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왔거나, 혹은 사람에게 상처 잘 안받는 성격의 소유자라면(한쪽 귀로 넘겨낼 수 있는 성격) 병원 생활을 잘 버틸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전자는 불안합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도 병원 일을 하다 보면 성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동일직종을 가진 분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 하나가 이것입니다.


"나는 원래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였는데 간호사를 하고 나서부터는 도무지 긍정적으로 될 수가 없더라."


이해가 갑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착하기로 소문난 사람도 버티다보면 독해지는게 이 바닥입니다.


이런 처절한 직업을 어떤 방법으로든 버티기 위한 방법 하나를 알려드릴까요? 바로 도피처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만들 여력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땐 본인의 장점 하나라도 생각해보세요. 딱 하나면 됩니다.


저는 이렇다 할 장점이 없습니다. 그림도 못 그리고 노래도 못 부릅니다.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책 한장 한장 넘기는 게 유일한 낙인지라 친구와 연락도 잘 안하는 편입니다. 동생이 저와 싸울 때 친구 없다는 것으로 시비를 걸더라고요. 그 때 알았습니다. 제가 친구가 별로 없다는 것을요. 그런데 별로 불편한 점을 못 느끼겠습니다. 단점이라는 생각도 안 듭니다. 김생민 님께서 말씀했잖아요. 친구와 어울리고 다니면 돈만 쓴다고.


 제 친구는 책입니다. 비웃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책장에는 화일 하나가 있습니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독서 관련 활동을 기록했었는데, 그 화일의 제목이 바로 ‘책은 나의 친구’입니다. 그래서 책이 제 친구입니다. 저는 책 한권으로 욤비 교수님, 유시민 작가님과도 친구가 됐습니다. 강원국 작가님과도 친구입니다. 책 하나로 그분들의 삶을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됐습니다. 만일 제가 잘 된다면 그분들과 실제로 대면할 기회도 있지 않을까요? 우스운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단점 얘기하다가 변명만 늘어놓았네요. 다시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저는 춤도 못 춥니다. 첫 직장에서 입사하자마자 신규간호사 장기자랑을 준비하라 하더군요. 제가 들어갈 때 다들 춤연습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웨이브가 뻣뻣하다며 욕 많이 먹었습니다. 춤 추기 싫어서 대놓고 울고불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요즘 강제 장기자랑 파문으로 간호계가 난리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말 엄청 많습니다. (조만간에 제 의견을 피력할 예정입니다) 그때 상황만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여하튼 이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저의 장점 하나를 찾았습니다. 바로 장점이 없다는 것을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잘 안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실을 구구절절 늘어뜨려 한 곳에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입니다.


간호사를 시작하고 나서 살아갈 이유가 하나둘씩 사라져갔습니다. 그래서 힘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것저것 끄적이기’라는 낙을 애써 만들었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 이왕 하는 김에 인생목표를 크게 전개하고 싶었습니다. 에세이 작가가 되자! 십년 안에 책 한권 쓰자! 그래서 간호계의 실상을 사람들에게 알리자!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시키자!


하지만 아무리 거창한 내용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허황된 꿈’으로 끝납니다.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할까?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됐습니다. 이왕 적는 김에 잘 적고 싶었습니다. 나름대로 글쓰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닥치는 대로 글을 썼습니다. 지역 잡지에 글 기고하기, 독서감상문 쓰기 공모전, 글짓기 대회에 원고를 썼습니다. 생각보다 내용이 괜찮았는지 쓰는 족족 작은 상이라도 받았습니다. 제 꿈에 근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렇게만 10년 하면 글쓰기 실력이 무진장 늘어날 것만 같습니다.


장점을 하나 만들고 거기에 의미 하나를 부여해 살아가면 고된 일상에 작은 활력이 생긴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곳에 굳이 있어야 하나요?


이쯤에서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울하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걱정이나 불안으로 보내기엔 오늘도 짧다. 들판의 데이지가 아름답고 저녁 밤하늘이 반짝이지 않던가.”


제가 말하는 방법도 도무지 먹히지 않는다면, 사직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세요. 그게 옳다고 봅니다. 간호사로 아등바등 버티는 게 밑거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건강이나 마음까지 좀먹으면서까지 일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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