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민 Sep 25. 2022

N잡에 대한 고찰

N잡러 인터뷰

얼마 전 A학보사에서 N잡러에 관한 특집 기사를 쓴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그때  답변 그대로 브런치에도 남겨본다.

요즘 대세라는 'N잡'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


Q1. 스민 님이 현재, 혹은 과거 동시에 임했던 직업명을 나열해주세요.   

저는 현재 전문 영어 통·번역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 업무인 번역과 통역 외에도 영어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종종 맡곤 합니다. (대개 통역과 번역 업무로부터 파생된 일들이지만요.)

엄밀히 따지면 번역과 통역 또한 굉장히 다른 성격의 일이라서(둘 다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전환한다는 공통점 있지요),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이미 N잡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통역과 번역의 분야에 따라서도 업무 차이가 상당히 큰데요, 번역만 하더라도 책 번역과 드라마나 영화의 자막 번역, 기술문서 번역 등 종류가 천차만별이죠. 그래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일을 하는 것 같은 N접러가 된 기분이에요.

통역과 번역 외 최근 몇 년간 해온 일들을 나열해보면, 영어 인터뷰 모더레이팅(해외 연사 인터뷰의 사회자 역할), 영어 홍보물 작성, 영어 강의, 보이스 코칭, 연구소 자료 요약 등이 있습니다. 모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고정된 일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통해 들어오는 예측불허의 일들입니다.

제가 맡았던 조금 생소한 역할로는 ‘컴퍼니 매니저’가 있는데요. 코로나 이전, 해외 공연의 번역과 통역을 맡으면서 ‘컴퍼니 매니저’라는 타이틀로 해외 공연팀과 국내 제작팀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며 공연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왔어요.  


Q2.  N잡러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처음부터 N잡러를 목표로 삼아 이런저런 일들을 찾아 나선 건 아니에요. 주어진 통번역 업무를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레 클라이언트로부터 새로운 일을 역으로 제안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생각해보면 대학교 재학 중에 경험한 영어와 관련된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졸업 후 기업에서 맡았던 다양한 업무가 N잡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대학생 시절,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겠다는 목표로 영어 강사, 영어 기자 활동을 비롯해 영어 출판물/홍보물 제작 보조 등 영어와 관련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리고 졸업 후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는데요. 생활비와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 과거 아르바이트와 기업에서의 경력을 살려 비즈니스 영어 기업 출강이나 간단한 문서 번역을 했어요. 외국계 기업에서 쌓은 경력(미국 패션 브랜드 갭(GAP)에서는 수출입 머천다이징을, 글로벌 명품그룹 LVMH P&C에서는 마케팅을 했어요. 그중에서도 자연주의 브랜드 Fresh Korea의 첫 창립멤버였죠.) 덕분에 어느 기업의 수출팀으로부터 피칭을 위한 보이스 코칭을 요청받았을 때도 흔쾌히 도와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이런 식으로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인연들이 감사하게도 제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나 졸업한 후에도 영어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맡겨 주셨어요. 덕분에 저는 따로 취업하지 않고 지금껏 프리랜서로 먹고살고 있죠.

 

Q3. N잡러로 활동하며 체감한 장, 단점은 무엇인가요?   

N잡러의 가장 큰 장점은 일이 지루해지거나 일로 인한 권태감을 느낄 틈이 없다는 거예요.

보통 한 가지 일만 지속하다 보면 아무리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한 일일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초심을 잃고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죠.

하지만 다양한 일을 하면, 한 가지 일이 지겨워지거나 일 때문에 다소 지치더라도 또 다른 업무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어요. 새로운 일을 맡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때론 설레기도 하고, 다른 성격의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기도 해요. 어릴 적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요? 국어나 수학 한 과목만 공부하다 보면 지치잖아요. 하지만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면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좀 더 흥미를 갖게 되죠.

그리고 때로는 기존에 하던 일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도 있어요.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역시 어떤 일을 하든 쉬운 일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죠.

가끔은 서로 다른 업무가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때도 있어요. 이를테면, 저는 통역을 하던 중 새로 알게 된 단어를 번역에 활용한 적이 있어요. 번역에 집중한다고 집에서 책이나 인터넷 검색만 했다면 절대 떠올릴 수 없는 표현이었죠.

N잡의 또 다른 장점은, 일에 대한 자신감을 쌓을 수 있다는 거예요. 나를 찾는 곳이 많고,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생각은 프리랜서에게 큰 힘이 돼요. 여러 클라이언트와 다양한 업무를 한다는 사실은 프리랜서의 큰 자부심이죠.

하지만 N잡의 단점도 분명 존재해요.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한 가지 일에 능숙해지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려요.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지기도 전에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하니까요.

보통 한 회사에서 하나의 업무만 맡아서 일하면 비교적 빠른 시간 내 일이 손에 익어 업무에 능숙해지는데, N잡러는 상대적으로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할 수 없다 보니 정신없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스케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죠. 이것저것 다 해낼 수 있을까란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일을 무사히 잘 처리하고 나면 돌아오는 성취감이 상당히 커요. 다양한 분야에서 인맥을 쌓고 뜻밖의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는 건 덤이고요.  


Q4. 어떤 특징을 가진 이들에게 N잡을 추천하나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좋아하는 사람, 책임감이 강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사람, 일을 통한 성취감을 즐기는 사람, 관심사가 다양한 사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잘 맞을 것 같아요. ‘어디 내가 한번 해보지’라는 배짱도 어느 정도 있으면 좋겠죠.

한 가지 일에 싫증을 빨리 느끼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는 맞겠지만, 그렇다고 매번 지금 하는 일이 싫다며 대충하고 새로운 일만 벌이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돼요. 끈기를 갖고 일을 지속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어야만 계속해서 일감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Q5. 스민 님은 N잡을 여전히 지속하고 계신지(혹은 지속할 예정이신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도 함께 작성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장기 번역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많이 줄어들어 당분간은 잡을 늘리기보다는 주 업무인 통역과 번역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본업을 잘해야 그 시너지 효과로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거든요.

프리랜서로 일한 경력이 점차 쌓이면서 들어오는 일의 양이 조금씩 많아지고 규모도 커지다 보니, 새로운 일을 받을 때 조금 더 신중해지더라고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아쉽게도 기존에 맡았던 다양한 일들을 하나둘 정리하게 되어서 예전보다는 잡의 수가 줄어들긴 했어요.

하지만 시간 여유가 생기고 제 능력과 적성에 맞는 좋은 기회가 나타난다면, 계속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N잡러로 생활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통·번역 외에도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등의 창작활동을 겸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어요.

저는 ’이 세상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해요. 세상이 계속 변한다면 그에 따라 조금씩 발맞춰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일이 생겨나면 나 또한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이 시대가 하나에만 올인하는 전문가보다 다재다능한 N잡러를 요구한다면, 그러한 추세에 맞는 인재가 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N잡러 #프리랜서 #통번역사


Jasmine (문화예술 통번역사)

인스타그램:  jeeminsta

이메일: jasmine-lee@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취미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