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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민 Oct 27. 2023

꼬마 조수 부려먹기

번역가가 ‘기계 번역기’를 활용하는 법

기계 번역 때문에 걱정되지 않으세요?”

“생업에 타격은 없으신가요?”

스스로를 번역가라고 소개하고 나면 더러  질문이다.


요즘 특히나 GPT와 같은 획기적인 AI 기술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계 번역기를 활용하는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에서는 번역가인 나를 걱정해주곤 한다.

과거에는 구글 번역기 정도만 있었다면, 이제는 파파고, DeepL, Kakao i 등 새로운 번역 플랫폼 이 넘쳐난다.


들리는 동료 기술 번역가*들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기계 번역 때문에 클라이언트들이 번역료 깎으려고   아니라, 번역보다는 감수라는 이름으로 주는 일거리가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감수를 요청하면서 번역물이라고 전달한 자료가 원문을 기계 번역 돌리고  ‘기계 번역물이라는 것.

대부분 오역 투성이인 데다가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원문과 대조하며 하나하나 뜯어고쳐야 하는데.

오히려 직접 번역하는 것보다  많은 수고가 곤 한다고... 하지만 억울하게도 감수료는 반토막 난다고...

오마이 갓김치! 듣는 내가 다 화나!

이런 불합리함을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서 알려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나서서 항의하는 번역가들이 별로 없나 보다.


클라이언트들도 , 번역 수준이나 한계를 제대로 알지못하면서, 번역기를 과평가해 비용 줄이는 데만 급급하다니.

번역가들만 피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참고로 기술 번역은 매뉴얼  기술적인 자료를 정보전달 위주로 번역하는 것 말하며, 정확한 용어로 옮기는 것이 중요해 흔히 트라도스와 같은 번역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이와 비교되는 문학 번역은 이전 챕터에서도 설명했듯, 문학처럼 글의 의미와 감성 전달이 중요한 번역을 말하며, 기술 번역에 비해 의역이나 창의력을 발휘하는 transcreation이 많이 허용—오히려 장려!—된다.)


 또한 번역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번역 진화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종종 원문을 번역기에 돌려보곤 하는데.

장의 주어를 완전히 잘못 잡거나, 조금만 구어체적인 표현이 나오면 갈피를 못 잡고 헛소리를 해대  워낙 오역이 많아,  내용을 원문과 비교하고  바로잡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문학 번역을 할 때는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기계 번역기의 ‘오역 폭탄’이 어떤 식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오역 사례를 정리해 봤다.

한영(한국어를 영어로 번역), 영한(영어를 한국어로 번역) 모든 경우...

(예시이므로, 간단히 하기 위해 원문의 앞뒤 내용은 생략했다.)


(영한번역)

[자동차 홍보문의 일부]

원문: The car flourished under his watch...

기계 번역: ...손목시계 아래 번성했다.

(여기서 under his watch는 ‘~의 감독/주시하에’로 번역했어야 할 텐데, 쌩뚱맞게 손목시계가 등장했다!!!)


(한영번역)

[소설 문장]

원문: 나는 눈싸움을 하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노려봤다.

기계 번역: I opened my eyes like a snowball fight and looked at him.

(싸움의 ‘눈’을 snow로 번역한 부분에서 빵 터졌다.ㅎㅎㅎ)


[에세이 문장]

원문: 늙은 당신이나 잘하세요.

기계 번역: Old Sugar God be good.

(당신을 당+신으로 번역한 창의력이란! 기계번역기가 나보다 농담 따먹기에는 능숙할 듯하다.)


[매거진 제목]

원문: 멤버들이 꼽은 최애 

기계 번역: Choi AE-gok selected by members

(모르는 표현은 무조건 고유명사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노력만큼은 가상하다.)

 

가끔 오역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기발하고 웃겨서, 일을 하다가 ‘기계번역 푸핫’이란 제목의 폴더에 기계 번역기 오역 모음집을 만들기도 한다.

아직까지 생계에 위협받지 않을  있고, 이렇게 웃어넘길  있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그럼에도 기계 번역기의  가지 장점을 꼽아보자면.

당연히 직역이 가능한 간단한 글은 큰 문제없이 번역할 수 있다. 단문의 글이면 거뜬히 잘 옮기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해, 뉘앙스까지 살리지 않아도 되는, 의미만 통하면 되는 글을 번역하기에는 딱이다.

아마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이메일을   기계번역기를 돌려서 사용하나 보다.(, 중대한 결정을 좌우하는, 민감한 내용의 비즈니스 이메일.)


내가 유일하게 기계 번역기를 활용하는 순간은 원문의 핵심 키워드를 빠르고 간단하게 파악해야  때이다.

특히, 무난한 수준의 단어들로 이루어진 텍스트(의역할 필요가 없거나, 비속어처럼 특이한 개념이 아니라면)의 경우, 키워드 정도는 잘 잡아주기도 한다.

사전을 사용할 때처럼 각각의 단어를 일일이 찾아보지 아도 되고, 단번에 한 문단, 또는 문서 전체를 통째로 옮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역이 있음을 감안하며, 쭉 훑어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 정도로 기계 번역물을 활용한다.


기계 번역기마다 각자주특기가 있겠지만, Kakao i 구글 번역기, 파파고, DeepL, 챗GPT  몇 가지를 비교하며 사용해 본 결과,

(순전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DeepL은 의역을 하는 경향이 다른 번역기들에 비해 매우 두드러져서 신기했다. 

원문에 없는 새로운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 어떻게든 풀어서 설명하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의역 결과물에 대해서는 (이 또한 주관적인 평가지만) 너무 앞서나간경향이 보였다.

즉,  자칫하면 역으로 판단위험이 .

물론,  또한 ‘번역에 대한 아이디어 얻기에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나는 기계번역기를 ‘브레인스토밍해주는 꼬마 조수정도로 생각하고 활용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단어를 제안해 주는, 빠릿빠릿하고 열정 넘치는 꼬마 조수.

아직 초짜  해도 어설프고, 원문 해석은 대부분 틀리지만, 엠비티아이가 T라서, 때론 생각이 너무 아 미궁 속으로 빠지는 F 성향의 나에게 의외로 쉽고 간단한 키워드를 제시해주기도 하는 그런 조수. 때론 지나치게 엉뚱해서,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기도 하.


하지만 조수는 조수일뿐.

 녀석에게 너무 의지하기보다,  직감을 믿어야 함을 잊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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