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검은 눈과 머리의 한영(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
아버지의 해외 발령 기간 중 미국에서 태어났고, 이후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초등학교 시절의 몇 년을 미국에서 보냈지만, 나의 모국어는 한국어다.
일반적으로, 번역을 잘하기 위해서는 도착어(번역되는 언어. 예를 들어, 한국어로 된 원문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도착어는 영어다.)를 모국어로 써야 한다고들 한다.
번역된 글을 읽는 독자가 그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의 아름다움과 일명 '글발'이 중요한 문학 번역의 경우, 한영 번역은 외국인 번역가들이 많은 편이다.
실제로, 내가 2019년, 코리아타임스 한국 현대 문학 번역상 우수상을 수상해 시상식에 참석했을 때, 대부분의 수상자들이 파란 눈의 외국인이었다. 소설 부문에서는 나를 제외한 두 명의 수상자 모두가 외국인(캐나다인과 미국인)이었다.
물론, 영어와는 언어 체계가 전혀 다른 한국어를 습득해 배우고 한국어 원문을 해석하고 고민하는 노력에 대해서는 정말 높이 평가하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호주 출신 한영 번역가에게 영어 잘해서 좋겠다~며 부러움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정작 한국어를 해석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힘들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한국인 번역가에게 외국인처럼 수려한 영어로 글을 쓰지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있다면, 외국인 번역가는 원문 해석이 어렵겠구나. 역시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가.
외국인 번역가들 번역의 장단점은, 문장은 수려하고 자연스럽지만, 한국어 원문을 한국인만큼 정확히 해석하지 못해 오역이 비교적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외국인 번역가가 번역해 번역 문학상까지 수상한 책들조차, 원문과는 별개로 임의로 해석되고 쓰인 부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물론, 번역은 새로운 창작임을 강조하는 transcreation이란 개념도 등장하고, 이제는 K문학이 한국 문학과는 별개인 또 다른 장르로도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Vegetarian<채식주의자>이다. 수려한 영어로 한국 문학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하기로 유명하지만, 일각에서는 많은 오역 논란이 있었다. 내가 듣기로, 데보라 스미스는 오역한 부분을 콕 집어 이메일로 보내온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괴로웠다고.
어릴 적 유년시절의 일부를 미국에서 보냈지만, 한국에서 보낸 시절이 훨씬 긴 나는 한동안 과연 내게 한영 번역가로서의 자격이 있는 걸까,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고민은 이따금씩 나를 괴롭히곤 한다.
결국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쉽게 쓰자!'다.
비록 한국에 살면서 매일 영어로 소통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영어 원서로 읽어왔다.
물론, 베스트셀러도 그 종류 나름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보통 베스트셀러가 요구하는 독해력 수준은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 일반 독자 누구나 술술 잘 읽을 수 있는, 쉽고 간결한 문체의 영어를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나는 괜히 어쭙잖게, 뭔가 '있어 보이는' 영어를 구사하겠다고, 어려운 어휘나 베베꼬인 문체를 쓰기보다는 쉽고 간결하고, 잘 읽히는 영어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번역가로서 나의 약점에 집착하기보다는 장점인 원문의 정확한 해석과 간결함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쉽게 쓴다고 해서 절대 유치한 글이 아니다.
단, 여기서 중요한 건 쉽지만 '정확한' 영어로 쓰는 것!
문법이나 철자 표기, 논리 구조 모두 정.확.하.게!
실제로, N사에서 웹툰을 영어로 번역하는 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번역가를 채용할 때 가장 1차적으로 보는 것이 원문의 내용 해석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지라도 원문을 잘못 해석해 오역할 경우, 거기서 바로 탈락이라고 한다. 화려한 글솜씨를 뽐낼 기회조차 없는 거다.
비록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이나 유학생, 교포가 아니더라도, 한국에 사는 한영 번역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번역에 할애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많은 시간을 미드 시청과 영어 원서 독서, 연구에 쏟으면 된다.
더 부지런히 검색하고, 더 많이 고민하면 된다.
단, 절대 나태해지면 안 된다!
'실력이 없으면 노력으로라도 매워야 한다.' 나는 어떤 일을 맡든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한국에 사는 나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며 매일 영어로 대화하는 외국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므로, 그만큼 노력으로 상쇄해야 한다고.
그렇게 믿고 하루하루, 치열하고 끈질기게 영어 공부하며 일한다.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이지 않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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