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게 '새로운 도전'이나 '시작'과 같은 단어는 별로 낯설지 않다.
이제껏 살면서 내 나름 수많은 도전을 했고, 무언가를 다시 새로 시작한 경험이 꽤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업에 도전했고,
그 다음엔 첫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그것도 직무를 바꿔 이직하는 것에 도전했고,
이직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회사생활에 회의감을 느끼자 대학원 진학에 도전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졸업한 후에는 프리랜서로 홀로서기에 도전했고
지금도 늘, 새로운 일이 들어올 때마다 새로운 주제의 내용을 통역하거나 번역하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
공모전처럼 사소한 것까지 전부 합치면 도전 횟수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도전'이란 단어를 너무 쉽게 남발하는 건 아니냐고? 그렇게 따지면 살면서 도전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딨겠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분명 모든 게 도전이었다.
큰 맘먹고 목표를 설정해 그것 하나만 보고 달려갔고, 결국 어떤 성과를 이뤄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목표한 바를 (겉보기에는) 척척 이뤄내는 것처럼 보이는 내게
새로운 도전보다 더 두려운 대상이 있다.
그건 바로
뭐 하나를 꾸준히 지속해서 '끝장을 보는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에 과감히 뛰어들어 도전하고 그걸 이룰 때마다, 대개 주변에서는 격려와 칭찬을 해주었다.
"용감하다," "과감하다," "참 대단하다"며.
그리고 그런 말들은 내게 큰 힘이 되어 더욱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작은 늘 반짝반짝 빛났고 희망찼다.
하지만 시작할 때의 초심을 유지하고 끝까지 버텨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때도 있었고,
초반에 너무 달리는 바람에 연료가 순식간에 바닥이 나 지쳐 떨어져나갈 때도 있었다.
취업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내가 이러려고 취업했나,'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참으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대학원 입시에 합격하고, 다시 학생이 되어 공부한다는 생각에 설레었던 마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매 순간 집중하고 긴장의 끊을 놓지 못하며, 끊임없이 퍼포먼스를 평가받는 수업에 점점 지쳐갔다.
힘들게 겨우 졸업하고 나서, 이제는 프리랜서로서 조금씩 새로운 생활에 자리잡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이번엔 뜬금없이 웬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나타나서는 계획되어 있던 내 일들을 하나둘씩 취소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그러다보니 오히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정규직 직장인이 부러워지려 하고,
뉴스나 신문에서 '탈세계화(deglobalization)'란 단어를 볼 때마다
'앞으로 해외 교류가 줄어들지도 모르는데 내가 계속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일할 수 있을까'
또다시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요즘 유튜브에는 '월 천만원 만들기,' '부업으로 월 6천 만든 썰,' '불로소득 만드는 다섯 가지 방법,' '소득 늘리는 파이프라인 구축하기' 등
"내가 했으니 당연히 당신도 할 수 있다"며 새로운 길로 나를 유혹하는 온갖 부자되기 동영상들이 판을 치고 있다.
며칠을 '나도 빨리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까. 대체 또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하며 방황하던 중...... 어느날 문득 궁금증이 생겨 컴퓨터를 켰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만화작가님의 블로그에 방문했다. 블로그를 쓱 둘러봤다.
전체 글이 무려 600건을 훌쩍 넘었다.
포스팅 날짜를 하나하나 봤더니, 며칠에 한번 꼴로 꾸준히 포스팅한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브런치에서 유명한(구독자가 많거나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우승한) 작가님들의 페이지에 하나둘씩 들어가 봤다. 마우스 스크롤을 쭉 내려봤더니
소수의 (천재적인) 몇몇 작가님을 제외하면, 대개 포스팅한 수가 100편을 훌쩍 넘었고, 그 수가 무려 수백 편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기 브런치 작가님의 포스팅 수는 수십 편에 불과했지만, 포스팅 하나하나의 퀄리티는 가히 대단했다. 직접 발로 뛰며 힘들게 얻은 정보를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하려는 성심성의가 글에 오롯이 묻어났다.
'거봐,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 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거라고.'
그때 깨달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이미 시작한 일들을 흔들림 없이 지속해 내는 뚝심'이란 걸.
물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우리의 일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질 거라고 하니, 그에 맞춰 조금씩 미리 준비하는 건 필수인듯하다. (이를테면 '비대면(Untact),' '안전(Safety),' '디지털(Digital)' 등 미래의 키워드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접목할 방법을 찾아본다든지. *김미경 강사님 유튜브를 참고함.)
하지만, 코로나가 만든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내 계획에도 없던 전혀 다른 일에 새로 도전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보다 지금껏 해온 일들을 묵묵히 지속해 보려 한다.
늘 새로운 것만 쫓아온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