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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감자 Jul 30. 2024

품위에 핑계를 붙이지 말자

KBS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직장 생활을 다룬 KBS 예능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는 아나운서실이 나왔다. 후배 아나운서가 중계를 미흡하게 준비했다. 선배 아나운서들의 말은 비판에서 비난으로 번졌다. 급기야 “아나운서 어떻게 했지? (입사 때) 면접 봤어요?”라던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종이를 책상에 내팽개치고 회의실을 나가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카메라 뒤에선 더한 일도 벌어진다. 방송국 근처 사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촬영은 철저한 기획 아래 이루어진다. 이 장면도 예외는 아니다. 제삼자가 듣기에도 거북한 인격모독을 굳이 내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일상이라 부끄러운 일임을 모르거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용납받을 수 있는 일로 여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업무는 수직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인격은 언제나 평등하다.  그 당연한 규범은 당연히 지켜진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인류는 인권, 노동권, 평등권 등 당연한 것을 위해 긴 시간 투쟁했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비단 KBS 아나운서실의 문제만이 아니다. 나와 당신이 속한 각자의 세계에서 폭력은 나름의 이유를 가진다. 예를 들면 요리사는 칼과 불을 쓰니까, 바쁘게 일하니까 험한 말을 써도 된다는 등이다. 핑계는 그럴싸하고 달콤하다. 이 정도 말은 필요하고, 할 수 있고, 나 정도면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명심하자 사람은 모두 나쁘다. 사람은 나쁜 만큼이 아니라 저지를 수 있는 능력만큼 죄를 짓는다.


품위는 갖추면 좋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칸트는 품위를 타인의 운명에 동참하는 일로 정의했다. 당연한 규칙에 그럴듯한 핑계를 대는 순간 우리는 상대의 발목을 잡고 비탈길로 굴러간다. 방송에 나온 KBS 아나운서실 모습은 우리가 몸 담은 세계와 다를 것 하나 없다. 폭력에 그럴싸한 이유를 대는 세상을 거울로 마주한 꼴이다. 그래서 그 장면이 더욱 불쾌했는지 모르겠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인간답게 존중받아야 한다. 이 당연한 규칙은 한순간도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다. 인류는 반성하고 투쟁하며 그 당연한 것을 지키는 중이다. 제발 품위에 핑계를 붙이지 말자. 비탈길을 구르기엔 너도 나도 소중하고 가녀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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