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남기는 것들

일상의 소중함

by 앨리

나는 기본적으로 저질 체력에 약간의 집순이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밖에 나가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만 외출 후에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충분히 재충전을 해줘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보면 I 지분이 70%쯤은 차지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행은 좋아한다. 환경이 바뀌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도 하고, 화장실도 잘 못 가는.. 환경의 변화에 몸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유형임에도 말이다.

아마도 여행이 좋은 이유는 일상의 멈춤과 탈출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행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문화, 사람들을 접하면서 사고가 확장되고 유연해지는 계기도 되는 것 같다.


런던-파리-뉴욕이라는 비효율적이고 조금은 이상한 루트로 보름간의 여행을 했던 적이 있다.

첫 여행지였던 런던은 마음에 쏙 드는 도시였으나 역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들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결국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다리에 피부염이 발생했고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파리로 이동을 했다. 파리에서는 내내 알레르기 약을 먹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며 일정을 이어나갔다. 알레르기 약 때문에 졸음은 쏟아지고 머리는 멍하고..

급기야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낭만이 넘치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멋진 에펠탑 야경을 보면서도 무리한 일정을 잡은 나 자신을 원망하며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다행히 뉴욕으로 이동해서는 적절히 휴식도 취하고 컨디션 조절을 잘 하면서 남은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했다.


여행지 자체의 매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따라서 같은 장소라도 다르게 기억된다. 나에겐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파리가,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도 거의 없고 화장실도 찾기 힘든 그저 그런 불편한 도시로 남아버렸다.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기억 또한 추억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파리 여행을 다시 해보고 싶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일상의 탈출이 달콤하면서도 나는 아이러니하게 여행을 통해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는 한다.

안락한 내 방과 침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지극히 소소한 내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여행이 나에게 남기는 가장 큰 부분은 일상의 소중함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을 시작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지키기 어려운 다짐과 함께, 다음 여행을 꿈꾸며 일상으로의 복귀까지..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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