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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람 Feb 07. 2023

필요 없는 점수

고등학생 시절, 제2외국어 과목으로 ‘일본어’를 만났다. 일찍부터 음악대학으로의 진학을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제2외국어는 그저 ‘필요 없는 점수’에 불과했다. 일본어 담당 선생님도 그 점을 인정해 주셔서, 일본어 시간에 다른 일을 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일주일에 두 번 할당된 수업이 자유시간이 된 셈이다. 


그 후로 일본어 시간이 되면 보란 듯이 오선지를 펼쳤다. 교단에서 선생님이 열성을 다해 가르치시고, 조금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초롱초롱한 눈동자들이 온 힘을 들여 지식을 흡수하는 동안 나는 특별함을 만끽하며 오선지에 음표를 그렸다. 

매시간 특별함에 심취하는 만큼 점수도 특별해졌다. 일본어 첫 시험에 35점. 이후로도 경이로운 점수를 기록했다. 생활기록부의 일본어 평가란에는 ‘가’라는 문자가 새겨졌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일본어를 다시 만난 것은 무사히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후였다. 여름 방학을 맞아 넉넉한 시간을 마음껏 떼굴거리다 우연히 일본 드라마를 접했다.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소재와 전개에 나는 빠르게 매료되었다. 한 편이 두 편이 되고, 열 편이 되고. 다른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옮겨가며 많은 작품을 섭렵했다. 드라마를 보느라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다. 즐기는 것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가’를 새겨 넣은 형편없는 일본어 실력으로도 어렵지 않았다. 친절한 자막만으로 충분했다. 처음에는.

시간이 가면서 의역된 자막의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화 중에 맥락이 맞지 않는 부분이나, 농담조로 쓰이는 한국식 표현이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귀가 오랜 시간 일본어에 노출되면서 들리는 단어들이 생기며 위화감은 점점 더 커졌다. 그로 인한 답답함이 일본어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를 자아냈다. 필요 없는 점수였던 일본어가 ‘이해하고 싶은 언어’가 되었다.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무작정 일본 소설을 원서로 구매해 읽고, 익혔다. 동글동글한 히라가나, 뾰족뾰족한 가타카나. 학교에서 배운 그것들과 모양도 읽는 법도 다르지만 뜻은 같은 한자. 세 가지 문자들이 어느 상황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갔다. 드라마의 대사들이 생생하게 들리고, 그에 반영된 사회를 이해했다. 답답함이 해소된 자리를 뿌듯함이 채웠다. 자막 없이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기쁨에 하루하루가 충만했다. 

학습하는 과정이 이렇게 즐거울 때가 있었을까.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었다. 전공인 음악을 공부할 때도 이만큼 신나진 않았다. 음표를 그릴 때보다 흥겨운 리듬이 일본어에 있었다. 그래서 즐겼다. 흥이 날수록 학습은 놀이처럼 쉬워졌다. 얼마 가지 않아 듣고 읽는 것을 넘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할 수 있게 되니 쓰고 싶어졌다. 일본어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 것이다. 


일본어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중 ‘통역사’라는 직업이 관심을 끌었다. 바람은 ‘통역사’로 구체화해 꿈이 되었다. 나는 다른 것을 제쳐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했다. 자격을 갖추려 시험을 치고 점수를 노렸다. 가능한 높은 점수. 그것이 간절했다. 한때는 ‘필요 없다’ 경시했던 점수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후회가 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 다닐 때 기초를 탄탄하게 해둘걸. 그랬으면 조금 더 쉽게 꿈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몇 번의 시련을 거쳐 한 일본 회사의 통역사가 되었다. 일본어를 마음껏 구사하는 날들이 무수히 행복했다. 현지인들에게 스스로 ‘한국인’이라 말하지 않으면 일본인이라 여겨질 때마다 나는 학창 시절의 점수를 떠올렸다. 평생 사라지지 않을 생활기록부의 ‘가’도.


‘필요 없는 점수’가 세월을 넘어 ‘간절한 점수’가 되는 경험은 내게 한 가지 소중한 신념을 선사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업신여기거나 얕잡아보지 말 것. 지금은 우습게 느껴지는 것이 언젠가 그 무엇보다 절실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더 큰 가치로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점수일 수도, 물건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일본어가 이제는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것처럼. 



세종사이버대학교 22년 가을학기 고수리 교수님의 [에세이 창작의 이해] 중간고사 과제로 제출하여 우수과제로 선정된 에세이입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모로 시달리던 시기와 중간고사가 겹쳐 공을 들이지 못한 글이라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좋은 점수를 받아 부끄럽기도 했고, 우수과제 선정이라는 영광에 몸둘바를 몰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 올립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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