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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람 Jul 03. 2023

직장이라는 레일에서 내려서다

행복하기 위해

  사직서를 던졌다. 자잘한 알바를 제외하고는 두 번째 직장이다. 사랑했던 첫 번째 직장이 한국에서 철수하지만 않았어도 만나지 않았을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란 없듯, 2019년 이 직장과 만났고 지금껏 함께했다.      


  ‘함께’라는 긍정적이고 정겨운 단어를 쓸 수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일본으로 진출 할 계획이 있다’는 대표의 말에 속아 만 4년 5개월 동안 내 전문성이라고는 조금도 살리지 못한 채 견디고 견디기만 한 곳이니. 근무 환경은 말할 것도 없이 열악하고, 연봉은 이전 직장의 3분의 2도 되지 않는 블랙 기업인데, 되돌아보면 참 오래 견디기도 견뎠다.

  그나마 초반 3년 동안은 월급이 적은 만큼 일도 적어서 남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개인 활동이 가능해서 참을 만했었다. 힘들어진 건 작년 초부터다. 3년 동안 근무한 지사가 없어지고 본사로 흡수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길이 아무리 막혀도 차로 25분이면 충분하던 출퇴근 시간이 편도 1시간으로 늘어나고, 칼퇴근이 보장되었던 업무가 아무리 잔업을 해도 끝나지 않는 양으로 불어났다. 일주일 중 6일을 회사에 바치고 겨우 남는 휴일은 바닥난 에너지를 채우기에도 모자랐고, 당연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도 버거워졌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활발하게 했던 웹소설 작가 활동은 강제적으로 접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불만이 쌓이며 시간이 갈수록 우울해졌다.      


  우울이 쌓이면 병이 된다. 지금껏 해 본 적 없는 절망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의미 없이 살아서 뭐하지? 조금도 즐겁지 않은데 살 필요가 있나? 내일 눈을 떠야 하는 이유가 있나?

스스로 심각성을 인지하고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아주 진지하게. 가까운 정신과가 어디인지 검색도 했다. 그런데 무서웠다. 선뜻 나설 수가 없어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우울의 근본을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즐겁지 않고, 희망이란 없고, 미래 따위는 눈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회사를 나가면, 생각만 해도 즐거운 ‘글쓰기’라는 일과, 원하는 만큼 벌지 못해도 행복한 ‘작가’라는 직업을 되찾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더 볼 필요가 없었다. 당장 과감한 선택을 행동으로 옮겼다. 상사에게 퇴사 예정임을 알리고 인수인계를 논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직서를 제출했다.      


  회사가 정한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직원들은 직장이라는 레일 위를 가열차게 달린다. 나를 돌아볼 시간은 없다. 가족을 돌아볼 시간도, 주변을 챙길 시간도 없다. 그저 달린다. 정해진 시간 안에 골인하지 못하면 개인적인 시간을 들여서라도 도달해야 한다. 매일같이 달린다. 달리다 보면 무뎌진다. 꿈도, 희망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풍경이 된다. 회사의 이익을 챙겨주고 받는 월급으로 만족하면 다행이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고, 멈추었다. 지금은 저 멀리 뛰어가는 동료들의 등을 보며 걷고 있고, 10일 후면, 내려선다.      


  더이상 내 앞에 남이 정한 레일은 없다. 스스로 갈 길을 정하고, 그 위를 걸어갈 일만 남았다. 때론 버거울 날도 있을 것이다. 혼자가 외로울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길 위에서 즐거울 것이다. 미래를 보며 희망을 품을 것이다. 행복한 작가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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