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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람 Jul 19. 2023

직원을 대하는 태도 (1)

J계 중소기업 VS K-중소기업

  한창 대학을 다니던 스무살. 필자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만났다. 2004년. 지금의 K-붐과 비슷한 J-붐이 불고 있을 때였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필수로 공부했던 국사나 세계사에 등장하는 일본은 알았지만 그저 알고 있는 정도에 불과했기에, 새로운 일본과의 만남은 신선했다. 필자는 빠르게 그 나라의 문화에 빠져들었다. 주로 접한 것은 외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케이블에서 본 드라마였다. 


  흥미로웠다. 당시의 따분하기만 하던 한국 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재미가 거기에 있었다. 하나하나 드라마를 섭렵해가며 그들의 언어를 익혔다. 익히는 것을 넘어서 공부했다. 말할 수 있게 되고, 읽게 되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는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더 깊이 공부했다. 목표는 일본 현지 관광 가이드였다. 그러던 중간에 노선이 바뀌었다. 가이드 시험 대비로 다니던 학원을 통해 들어온 단기 아르바이트를 나가면서였다. 


  한국에 수십억을 투자해 중소기업을 인수한 일본 기업인의 의뢰였다. 필자가 통역으로 투입되었을 때 그들은 한창 법정 다툼 중이었다. 내게 주어진 일은 한국의 변호사와 일본 기업인 사이의 내용을 이어주는 통역사로서의 업무였다. 하루 일정에 20만원. 대학 공부를 중단하고 가이드 준비에만 전념하고 있던 필자에게는 솔깃한 제안이라 바로 승락했다.


  한국인 책임자를 만나 통성명하고 간 공항에서 그 분, T회장을 만났다. 한국 중소기업에 큰 돈을 투자한 일본 중소기업 대표였다. 당시 60대 초반이던 어르신은 나보다 키가 작고 왜소했다. 선한 인상으로 인사를 받은 그는 반갑게, 또 정중하게. 허리를 90도로 숙여 필자를 맞아 주었다. 한 회사의 대표라는 직위만으로 상상했던 권위적인 이미지와는 아주 많이 다른 첫인상이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T회장이, 또 그가 인수한 회사가 처해 있는 상황 설명을 들었다. 작은 선박 2대를 보유한 업체의 인수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해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들어본 비즈니스 용어, 법률 용어들이 줄줄이 튀어 나왔다. 필자는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그것을 이해하고, 통역했다. 그렇게 총 3일. T회장을 보필하며 기업 통역사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3일은 팍팍했다. 경찰서, 변호사 사무실, 법원 등.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도, 갈 거라 상상해 보지도 않았던 곳들을 다녔다.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오면 도저히 머리를 더 쓸 여력이 없어 나가 떨어질 정도였다. 그렇게 힘이 들면서도 불평 하나 할 수 없었던 것은, 일개 단기 통역사를 대하는 T회장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필자와 한국 책임자(당시 34살의 젊은 남성이었다)를 하대하지 않았다. 항상 성 뒤에 'さん(상, 한국의 '~씨'와 비슷한 상대를 높이는 호칭)' 을 붙이고 말을 높였다. 하루 임금을 20만 원이나 받는 쌩 초짜 통역사가 잘 모르는 비즈니스 용어나 법률 용어를 만나 당황하고 헤맬 때 친절히 웃으며 풀어서 설명. 죄송하다 사과하면 괜찮다 답했다. 그럴 때도 웃음을 지우는 일이 없었다. 처한 상황에 화가 나 열변을 토할 때에도 사람에 대한 존중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몸에 베어있는 자세였다. 그렇게 필자는 존중받았다. T회장을 만난 모든 사람이 존중받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T회장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도 저런 오너와 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주 뒤, 정식으로 입사해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1년 반동안 열심히 준비한 가이드의 길을 포기하면서. 


  일본계 중소기업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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