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 Oct 12. 2019

소확행이 지겨워졌다

삼포세대에게 장래희망은 사치일까.

슬금슬금 모든 게 평화로워진 시점이었다. 업무도 익숙해지지고, 내 취향에 꼭 맞는 맛집 리스트들이 생기고, 생각이 복잡해지면 넷플릭스로 머리를 비워내고, 나한테 딱 맞는 사람만 만난다. 내향적인 인간이 확실한 취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안전하고, 비슷한 일주일을 보낸다는 말이다.


며칠 전 회사에서 인턴하는 친구와 둘이 밥을 먹었다. 그는 20대 중반이고,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채로 회사에 왔다. 그의 계약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침묵을 피하기 위해 '학교 가서는 어떤 수업을 듣는지', '졸업하고는 어떤 일을 할 건지' 등의 보통의 질문을 했다. 휘릭 던진 질문에 그의 답변은 생각보다 더 단단하고 명확했다. "내 분야에서 유명해질 거다,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재미있는 걸 많이 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나의 일주일은 요가로, 맛있는 커피로, 좋은 영화와 책으로 가득 채워졌지만, 아주 오랫동안 '야망'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커다란 장래희망을 가졌었나. 아무리 떠올리려고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당연하게 소확행을 외치며 살고 있다. 내일의 불안보다 오늘의 행복을 직시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SNS에 선언한 퇴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는다. 퇴사하고, 훌쩍 세계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들이 책,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에 쏟아지고 있다. 어차피 삼포세대는 죽어라 돈을 모아도 집을 사기 어려우니깐. 어쩌면 삶의 중심을 안전한 미래에서 행복한 오늘로 옮겨오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 수 있겠다.



친구 J는 말했다. 이상하리만큼 모두가 소확행을 좇는 게,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가 세대에게 주입한 지독한 개념처럼 느껴진다고. 십대 때 끊임없이 답해야 했던 ‘장래희망이 뭐냐’는 질문조차 어른이 되자마자 단번에 사라졌다.


인생에서 일구고 싶은 방향을 정확히 두고, 하루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을 상상한다. 어쩌면 나는 지나치게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으로 인생을 황급히 칠해버린 건 아닐까. 나침반이 없어진 걸 모른 채 신나게 항해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거 같다. 아, 정말이지 소확행이 지겨워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러나 언제나 말은 강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