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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Mar 06. 2022

자기 학대적 일하기 습관

노동자 A의 쿨한 엔딩.

거뭇거뭇한 새벽에 슬그머니 눈이 떠졌다.


유독 회사에서 심장이 콱 쪼인 채로 온몸의 근육을 꽉 조인 채로 그 누구도 요청한 적 없는 불편한 자세를 유지할 때가 있다.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일들에 뒤덮여 있을 때면 책상 앞에 앉아 나도 모르게 경직된 자세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타자를 친다. 해야 할 것들의 날짜와 시간을 계산하고, 많은 이들에게 상처 주거나 번거롭지 않게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떠올린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도  꾹 참는다. 때론 이런 행동이 일의 결과와 전혀 관계없는 '자기 학대적인 짓'이라 생각하면서도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작은 환기나 생리 현상 해소를 스스로에게 용납하지 않은 채 재빠른 자세로 일을 마무리하고, 메일을 보내는 동시에 일어선다. 이런 식의 엔딩만이 마치 노동자의 쿨한 엔딩인 것처럼.


금요일 밤이 지나야 갑옷처럼 단단한 '직장인 나'를 하루 정도 벗어내고 무장 해제된 '인간인 나'로 거듭난다. 구석으로 미뤄둔 책도 몇 장 펼치고, 봤던 드라마를 다시 보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재정 상황을 돌아보고, 살림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다 까무룩 잠이 든다. 아무런 계획 없이 툭 늘어진 시간을 대여섯 시간 보내고 나서야 직장인 모드가 벗어내 진다.


어렴풋한 방 잠들다 눈을 뜨면 슬그머니 '삶은 그렇구나, 언제고 죽음이 오겠구나' 머릿속으로 투미한 문장이 살포시 떠오른다. 아무런 기척 없이. 살아감에 대한 생생한 각성은 놀랍게도 불현듯 찾아온다. 매일 스스로를 돌아볼 틈 없이 지냈음에도 매우 돌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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