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빡쎄요.
나는 혼자 산다.
혼자 산지 11년 정도 되었다. 이제야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중이다. 어떤 한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건 스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면서도 기를 엄두를 내지 않고, 혼자라 적적하다고 느낄 때도 있으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사는 생활이 그려지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 막연히 혼자가 너무도 편한 체질인가 보다 넘겨짚었다.
시간이 많지만, 할 일은 더 많아서 몸 관리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요즘은 일부러 집과 가까운 호수공원에 산책을 간다. 동네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가깝긴 하지만 걸어서 가기엔 조금 멀어서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집 밖으로 나가고, 주차장에 가서 차를 찾고,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고, 호수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해서 나를 그곳에 데려다 놓는다. 데려다 놓은 보람은 있어야 하니까 꾸역꾸역 공원 한 바퀴를 걷는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한층 가벼워지고 상쾌해진다. 문득문득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며칠 전이었다. 또 의지와 다르게 늦잠을 잤고, 늦은 만큼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었지만 배가 고팠고, 집에 있는 먹을 수 있는 것 중 아무거나 먹고 업무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굳이굳이 맛있는 게 먹고 싶었다. 동네에 '직접 만든 진짜 순대'라는 컨셉의 순대집이 있다. 그곳의 순대와 순대국밥을 좋아한다. 먹고 나면 몸이 건강하게 차오르는 느낌도 들고 기분도 좋아진다. 요즘 말로 '소울푸드'라고 할 만한다. 나만의 소울푸드. 끼적끼적 겨우 사람처럼 보일만한 몰골을 하고 가서 너무도 맛있게 나의 소울푸드 순대국밥으로 몸을 채웠다.
'아. 이제 좀 움직일만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오후 두시였다.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나 밖에 없지만 일부러 큰소리로 말한다.
' 자, 이제 일을 시작해볼까? '
몸은 이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은데, 머리가 작동을 하려하지 않는다.
'나 시원한 바람이 쐬고 싶어. 기분 좋아지는 햇살을 쬐고 싶어. 산뜻한 전환이 필요해.'
끊임없이 징징거린다. 이럴 땐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정신머리로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꾸역꾸역 타자를 쳐봐야 일이 진척될 리 없다.
'그래. 호수공원 딱 한 바퀴만 걷고 오자.'
이렇게 시시콜콜한 사연 때문에 갈 계획에 없던 호수공원에 이 날도 가게 되었다. 오후의 햇살은 적당했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가 살랑여서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호수에 햇살이 비쳐서 반짝거리는 광경을 바라보며 걷는 일은 정말 만족스럽게 느껴졌고 마음이 충만해졌다. 하지만 시간은 벌써 오후 네시 반. 시간을 정말 펑펑 쓰고 있다. 아무리 지금 가진 게 시간밖에 없는 상태라지만 주요 자산이 시간인데 이렇게 펑펑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러다가 생각이 난 거다. 내가 혼자 사는 게 편한 이유. 혼자 살지 않을 엄두를 내지 않는 이유.
이렇게나 까다로운 한 사람을 기르는 중인데, 또 다른 존재를 신경 쓰기가 너무 버거울 수밖에 없는 거다. 이 얼마나 까다로운 인간이란 말인가! 태생적으로 잠이 많고 수면부족에 취약하기 때문에 잠도 푹 재워야 하고, 배고프면 맥을 못 춰서 배고픈 상태도 잘 못 견디기 때문에 먹을 것도 제때 잘 챙겨줘야 한다. 챙겨주면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먹으면 기분 좋아지는 음식' 같은 것들을 종종 찾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챙기기도 만만치 않다. 집중력이 약해서 산뜻한 컨디션을 유지시켜줘야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도 필수다. 답답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작업하는 것을 힘들어해서 공간 관리도 해줘야 하고, 기분이 안 좋아져도 집중을 못하기 때문에 수시로 기분전환까지 시켜줘야 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인간을 11년 동안 혼자 길러온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나를 칭찬해본다. 더구나 대체로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주면서 길러왔다니 정말 대단하다. 사람 한 명 제대로 기르는 건 힘든 일이다. 나는 지금 그 힘든 일을 하고 있고 그 이상을 하는 건 무리다. 역량이 더 갖춰지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혼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시피 까다롭고 효율적이지 못한 나라는 사람의 소소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특별하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지구 상의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이야기.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면 자기 자신이라도 똑바로 아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 그런 사람의 스스로 양육기.
그 이야기가 공감에서 오는 위로, 사람의 다양성에 대한 감탄, 나와 다름에서 오는 신박한 재미,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도전정신 유발 중 어떤 한 가지, 혹은 다른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미미하지만 의미 있는 반짝임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묵묵히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