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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Nov 14. 2021

혼영하는 사람들의 특징

혼자력의 문제


#1. 평일 낮의 영화관


평일 낮의 혼영을 좋아한다. 여유롭기 때문이다. 넓은 영화관에 소수의 인원만 들어있으면 1인에게 할당된 공간이 무척 넓어 흡족한 느낌이 든다. 시끄럽지도 복잡하지도 답답하지도 않아서 좋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후로 영화는 거의 평일 낮에 혼자 보러 다닌다. 


물론 주말에 친구나 연인과 함께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넓은 공간과 조용한 시간이 주는 쾌적함이 친구나 연인이 주는 복닥한 즐거움보다 마음에 든다고 하면 그들이 섭섭할까? 물론 평일 낮에 친구나 연인과 함께 볼 수 있다면 더욱 환영이다. 일부러 혼자이고 싶어서 혼영을 하는 타입은 아니니까. 주변에 평일에 한량처럼 노는 사람은 나밖에 없기에 혼자 보러 다닐 뿐이다. 회사다닐 때는 할 수 없었던 일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혼영하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는 행동 패턴을 인지하게 되었다. 흥미로웠다.


#2. 혼영하는 사람들의 특징


그들은 영화 시작 바로 직전에 입장한다. 영화 시작 전 10~20분 정도 예고편이나 광고가 나오는 시간에는 영화관이 완전히 어둡지 않다. 영화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어스름한 조명이 켜져 있다. 예고편과 광고가 종료되고, 비상구 안내까지 나와야 완전히 캄캄해진다. 그들은 보통 바로 그 때 들어와서 착석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영화관을 빠져나간다. 쿠키영상이 있는 마블영화 같은 경우는 쿠키영상을 기다리느라 조금 더 앉아있기도 하지만 쿠키영상이 끝나자마자 얼른 일어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왜 그렇게 촉박하게 들어와서
서둘러서 나가는 것일까? 



혼X의 시대라고 한다. 혼밥, 혼술, 혼영, 혼공, 혼쇼핑, 혼코노, 혼여 또는 혼행. 혼자하는 모든 행위 앞에 '혼'자를 붙여 표현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보통은 혼자하지 않는 일을 혼자하면 '힙하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혼영하러 온 사람들이 도둑처럼 입장했다가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모습을 매번 볼 수 있는 걸 보면.


나의 경우 여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보통 영화표에 표시된 영화시간 전에 영화관에 입장한다. 영화는 영화표에 표시된 시간보다 약 10분정도 늦게 상영되므로 영화 시작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15분 정도 일찍 입장하는 셈이다. 영화 종료 후 자막이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도 지루해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도 조금 더 앉아있다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영화관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보려하지 않아도 보이고, 보이니까 생각을 하게 됐다.


칼입장 칼퇴장은 단지 시간을 알뜰살뜰하게 활용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서두름 속에 어색함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일행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것 같다. '혼자'보다는 '같이'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인 행동인지 무의식적인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혼자 영화보러 온 사람들이 최대한 남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게 순식간에 들어왔다 나가는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들을 붙잡고 속마음을 인터뷰 한 것은 아니기에 단정지을 수는 없다. 나의 편견일 수도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을 보며 '혼자하는 문화'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3. 나의 혼자력(力)


갑자기 나는 왜 아무렇지 않은지 궁금해졌다. 나는 왜 혼자가 아무렇지 않은가. 언제부터 아무렇지 않게 되었는가.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원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혼자가 편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고맙게도 주변에 사람이 없는 편은 아니었어서 오히려 살짝 피곤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성향에는 누군가와 함께일 때와 혼자일 때 비율 50:50이 적절하다고 치면, 생활 흐름상 70:30의 비율이 되곤 했다. 넘치는 20의 시간이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굉장히 독립적이고 혼자서도 늘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는 역시 퇴사다. 퇴사하고 혼자있는 비율이 95가 됨에 따라 사람이 그립다는 낯선 느낌이 찾아왔다. 조직생활이 그다지 맞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조직이 그리웠다. 부모님 댁에 몇 달에 한 번 내려가면서도 그리움보다는 의무감이 앞섰던 내가 순수한 그리움에 한 달에 한 번씩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나는 그렇게 독립적이지도 특별히 강인하지도 않은 지극히 보편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4. 혼자서도 잘해요


그렇지만 혼자하는 모든일에 익숙하다. 편안하다. 자유로워서 즐겁다. 때로 사람이 그립지만 그건 지금 혼자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망망대해 같은 백수기를 지나 무언가를 하게된다면 혼자있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그럼 또 혼자있는 시간이 온전히 만족스러워지겠지. 혼자여도 즐거울 수 있는 나의 성향에 감사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긴 백수기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영화를 혼자 보러와서 불이 꺼지면 들어왔다가 불이 켜지기 전에 나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내 상황이라면 무척 외롭다고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나는 왜 혼자가 괜찮은지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면 괜찮을 수 있는 비법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점점 개인화되고 있는 시대에 딱 들어맞는 꽤나 쓸모있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덜 퍽퍽하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5. 따로 또 같이


아직 뚜렷하게 전달할 수는 없다. 어렴풋한 무언가를 다듬어내기 위해 오늘도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분석해본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각자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세상살이 비법을 서로에게 전수해 준다면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상상해본다. 생각만해도 따뜻하고 기분 좋다.


개인화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이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연대감이나 유대감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만의 개성과 자유로움을 유지하면서 그런 각자들이 언제든 필요할 때 함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함께 있지 않아도 함께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유대감이 필요할 것이다.




평일 낮의 여유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작은 방법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주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아닌 백수의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간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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