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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Jul 14. 2022

한여름밤, 가로등 불빛이 비춘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쳤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연스레 사람들과 만남이 줄었다. WHO에서는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을 권하지만 집에만 머물렀던 내게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피부에 와닿았다. 마스크를 쓰기 전, 요가와 필라테스를 꾸준히 했었다. 코치 한 명에 수강생 여러 명이 모여서 운동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더 이상 모여서 운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운동과 타인으로부터 멀어졌다.


  뜨거운 태양이 한걸음 물러난 초저녁,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나갔다. 붉은 여름 장미가 피어있는 담장 넘어 공원이 보였다. 공원에는 빨간 점퍼를 입고 자전거 타는 사람, 검은색 트레이닝 복을 입고 뛰는 사람, 어린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는 부부가 있었다. 매미 소리와 아이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한데 섞여 흩어졌다.   


  공원에 있는 사들을 보고 요가와 필라테스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같은 공간에 모여서 운동한다는 점만 비슷했다. 그렇게라도 모여있고 싶었다. 신발장에서 러닝화를 찾아 신고 나섰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공원을 밝혀주고 있었다. 몇 차례 가쁜 숨소리와 진한 땀냄새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혼자 걸었지만 혼자는 아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손목에는 스마트 워치가 1km마다 진동했다. 두세 번의 진동을 느끼고 속도를 줄였다. 걸음이 느려질수록 무더운 여름밤은 생기 있게 다가왔다. 희미한 구름 뒤에 반달이 숨어있고 흙과 풀냄새를 머금은 공기가 몸속을 채웠다. 잎사귀 스치는 소리와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여름 냄새와 소리에 오래된 일기장 속 한 장면이 펼쳐졌다.    


  아이가 좁다란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뜨거운 햇볕 아이에게 쏟아졌다. 푸릇푸릇한 벼는 논을 빼곡히 채웠고 주변에는 잘 자란 강아지풀이 살랑거렸다. 실컷 달린 아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풀밭에 있는 방아깨비가 보였다. 작디작은 아기 방아깨비를 등에 엎고 있던 엄마 방아깨비였다. 아이는 둘이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한여름밤, 가로등 불빛이 비춘 것은 방아깨비를 응원하던 아이의 마음이었다. 소리도 냄새도 진하게 머금은 공원에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멀어졌던 운동과 타인이 한 발짝 가깝게 느껴진다. 가로등이 걷는 사람과 뛰는 사람을 비추어 준다. '오래오래 잘 지내기를 바랄게요.'





Photo by Drew Thom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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