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고 있네

<소설(상)> 제임스 A. 미치너, 열린책들

by 정다

소설 쓰고 있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소설 쓰기는커녕 소설 읽기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명은 확실히 안다. 하필이면 남편은 말싸움의 절정에서 저런 소리를 했다. 분명히 각자 불쾌한 감정을 설명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말이다. 진짜 소설이라면 부자연스러운 대사였고, 퇴고 무렵에는 지워졌을 것이다. 현실에서 말은 흩어졌고 그는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제임스 A. 미치너의 <소설>에는 일흔이 가까운 노부부가 등장한다. 엠마와 루카스. 엠마는 막 소설 원고를 완성한 루카스에게 독일식 라이스 푸딩을 만들어준다. 건포도와 커스터드를 섞어서 오븐에 구운 푸딩은 표면이 캐러멜처럼 맛깔스러운 연한 갈색이다. 루카스의 만족감은 활자를 넘어 전해진다.


"첫 소설이 완성된 이후로 우리는 매번 이런 식으로 컵에 담아 먹으며 자축의 의식을 즐겨 왔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부엌에 앉아 - 우리 부부는 생활의 대부분을 부엌에서 보내지 않았나 싶다."


방금 전까지 우리 부부도 부엌 식탁에 앉아서 대판 싸웠다. 아침부터 정성스레 싼 김밥 도시락은 거실에 내팽개쳤다. 느긋하고 배려 넘치는 엠마와 루카스 부부와 닮은 점이라곤 생활의 대부분을 부엌에서 보냈다는 것뿐인데, 공통점 하나가 위안이 된다. 이런저런 부엌의 시간이 쌓이면 우리 부부도 일흔 즈음엔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게 될까.


"얼마나 참 묘한 삶인가! 엠마, 미즈 마멜, 미스 크레인, 이렇게 세 여자에게 고치처럼 둘러싸인 내 삶이란. 나는 이렇게 서재에서 타자기와 함께 있지만, 모든 결정은 그 여자들이 다 내린다. 지금까지 그들은 나를 잘 보호해 주었고,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 불평도 없다. 그러나 과연 기백 있는 남자라면 이런 식의 삶에 만족하겠는가? 하지만 나는 만족한다."


소설가 루카스가 아내, 편집자, 에이전트에 둘러싸인 삶에 대해 하는 말이다. 아내는 끝까지 소설을 쓸 수 있게 지지해 주고 편집자와 에이전트는 루카스의 작품을 믿어준다. 어디 보자, 남편은 내 직장 생활을 응원하고 숨 쉬듯 수행하고 있는 내 역할(딸, 아내, 엄마)을 믿어준다. 오후 두 시는 피크닉 가기에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남편의 불만으로 시작된 싸움을 <소설>에 기대어 본다.


"소설은 곧 성장을 보여주는 겁니다."


풀어보자면 소설은 곧 인물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이 좋은 이유는 인물이 납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각도에서 인물을 끈질기게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겨우 면으로 이루어진 2차원이면서 3차원을 넘어서는 순간이 많다.


갈 곳 없어진 김밥 도시락은 라면 하나를 끓여 저녁밥으로 먹어야겠다. 그전에 남편을 불러내어 짧은 봄날의 산책이나 다녀와야지. 대화로 풀리지 않은 관계라도 화사한 봄날을 배경 삼아 보면 남편을 한 겹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남편의 소설 쓴다는 말처럼 나는 삶을 소설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인물을 여러 각도에서 끈질기게 바라보는 여정 한가운데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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