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 제임스 A. 미치너, 열린책들
2055년 5월 22일 월요일(30년 후)
평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하는 행위 자체가 주는 위안이 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난 붉은 장미를 보며 곧 다가올 더위를 예감했다. 피고 지는 꽃들, 돌아오는 계절들.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은 없었다.
루틴 업무의 시작은 무인 반납기에 쌓인 책들을 꺼내어 연체 중인 도서 목록을 확인하는 것이다. 연체자들에게 전화를 한 바퀴 돌리고 통화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아침부터 회의 준비로 바쁜가. 하긴 나도 그 맘 때는 그랬었지. 일은 줄어드는 법이 없었고, 아이들은 갑자기 아팠으니까. 순간 휴대폰 화면 글씨가 무척 커다래 보였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큰 글자를 보아왔던가 아득해진다.
"늙었다는 거야 끊임없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지. 나이를 먹어 가면서 관절이 삐걱거리는 것만 해도 그렇다."
반납된 책 <소설(하)>을 제자리에 꽂으려다 발견한 문장이다. 옛날에도 읽었는데 왜 요즘은 이런 문장만 눈에 들어오는 건지. 한숨이 폭 새어 나왔다. 울울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왜 그래?"
"이 책이 나보고 늙었대. 오늘은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겠어."
울울이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른 서가로 갔다. <소설(하)>은 소설가 루카스 요더를 둘러싼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쓰고 은퇴를 선언했지만 평화로운 동네에 잔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이야기다. 등장인물 소설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중에서 나는 일평생 독자로 산 제인 갈렌드에게 끌렸다. 나 역시 갈렌드 여사처럼 독자로 살아왔고 그 역할을 아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갈렌드 여사 파트는 전개하는 방식도 일기 형식이라서 그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갈렌드 여사 일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일흔 넘게 살다 보면 그런 것들이 생활을 유지시켜 주기도 하지."
그런 것들. 내게는 높은 서가에도 제자리를 척척 찾아 책을 꽂는 울울이가 있다. 벌써 우리가 만난 지도 근 사십 년이 넘었다. 근무할 때는 각자 업무가 바빠서 점심때 한 시간 수다를 즐겼는데, 은퇴하고는 사내 도서관에서 함께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한담을 나눈다. 반평생 넘게 한 직장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아온 터라 각자 인생에 대한 해설은 필요 없다. 우리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누군가 빌려가지 않은 책을 읽는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씩 앞에 놓아두고 느리게 감상을 나눈다. 아직도 읽지 못한 서가의 수많은 책들을 바라보면 우리의 수다는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아주 오랜만에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니 일흔 넘은 작가가 쓴 대목이 여실히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은 시간은 사라진 게 아니라 관절 사이에 들어와서 이따금 삐걱거리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