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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다운 Jun 22. 2022

비 오는 날, 당신에게

우산 없이 비를 만난 나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보냅니다.

  여름이 코 앞까지 온 선선하고 맑은 날씨네요. 아침에는 창문으로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와서, 머리칼을 기분 좋게 흔들었어요. 점심을 먹고 창 밖을 보니, 컴컴한 비구름이 몰려와있네요. 변덕스러운 내 마음 같아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갑니다.


  외출 시간이 다가오자, 하늘에게 비를 내릴 건지 말 건지 확답을 듣고 싶었어요. 한참을 올려다보았죠. 창 밖으로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 두 명, 안 쓰고 가는 사람 두 명이 보이네요. 나는 우산 없이 가벼운 점퍼만 걸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갑니다.


  목적지 중간만큼 갔는데, 하늘에서 후드득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아이코, 우산을 들고 나왔어야 했어.'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네요. 꼬리를 물고 '항상 이런 식이지' 채찍같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비를 맞아서 축 쳐진 머리카락과 내 어깨가 닮았네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거나, 목적지를 향해서 가거나. 근처 카페로 가거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거나. 가족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겠네요. 무수한 선택지가 눈앞에 나타났어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네요. 뭐하나 고르기 두려운 마음도 들어요. 또 잘못된 선택지를 고르게 될까 봐요. 내가 나를 탓하게 되잖아요. 그 기분 되게 별로거든요.


  가까운 카페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통유리 창밖으로 나처럼 갑자기 비를 만난 사람들이 보이네요. 준비했던 우산을 꺼내어 쓰고 가는 사람, 우산이 없어 후다다닥 뛰어가는 사람. 우산 하나를 다정하게 나눠 쓰는 커플, 작은 우산 아래 깔깔깔 웃고 있는 교복 입은 아이 셋. 우산 없이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네요. 비에 젖은 나를 잊고, 다른 이들을 눈에 담았어요. 우산이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가는 모습이요. 비를 만난 순간 우산을 놓고 나온 내가 미웠거든요. 멈추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니 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네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어쩌면 산다는 게, 숨 쉴 때마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의 연속인지도 몰라요. 무슨 옷을 입을까, 어떤 신발을 신을까. 식사는 무엇을 먹고, 음료는 어떤 걸 마실까. 취업을 할까, 공부를 더 할까. 싱글로 살까, 결혼을 할까. 이런 선택들이요. 결국 인생은 순간의 선택이 모여서 나만의 작품으로 만들어질 거예요. 정해진 모범답안 같은 건 없어요. 모든 선택의 정답은 바로 나예요.


  갑자기 비를 만난 날, 나는 내 선택을 조금만 더 믿어보기로 했어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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