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육아휴직을 결심한 이유
“아빠가 좋아?” “뽀로로가 좋아?” 첫 째 딸 소율이가 세 살이 될 무렵 한창 뽀로로에 빠져 있을 때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 아무리 뽀로로지만 나는 아빠이고 너를 낳아 준 사람인데, 가상의 캐릭터보다는 나를 더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자신감 있게 던진 질문이었다. ‘뽀로로가 너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아빠가 더 좋아라고 말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면 나는 “아빠도 소율이를 많이 좋아해.” 하며 안아줘야지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실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뽀로로를 선택한 것이다. 안경 쓴 펭귄에게 인기투표에서 밀려나 기분이 상했다. 그러나 나는 인자하니까 그리고 뽀통령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이해해야지 하며 마음을 달랬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다시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빠가 좋아?” “두희 오빠가 좋아?” 두희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소율이와 함께 노는 이웃집 아이다. 우리 딸의 답변은 아빠 대신 두희 오빠였다. 나의 실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마치 벌써 다른 남자에게 우리 딸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질문이 급기야 ”아빠가 좋아?” “똥이 좋아?” 까지 이어졌다. 설마 똥이 좋을까? 그러나 이번에도 우리 딸은 똥이 더 좋다며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안고 있던 뽀로로 인형을 더 세게 안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별거 아닌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던 질문이 가족 내 나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가? 안경 쓴 펭귄보다도 못하고, 이웃집 두희 오빠보다도 못하고,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고 별 볼일 없는 존재인 배설물보다도 내가 못하다는 것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다.
소율이에게는 음식을 사주고 재밌는 장난감을 사주는 것보다, 음식을 먹을 때 함께 있어주고 재밌는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아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함께 있는 것, 함께 노는 것, 함께 추억을 만드는 것이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아빠로서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기저귀를 갈아 준 적이 없었다. 한 달에 몇 번 재미있게 놀아주기도 하였지만, 그때도 이내 내가 먼저 체력적으로 지치고 또 지루해서 어떻게 하면 이 놀이를 빨리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핑계 일 수도 있으나 나는 당시에 회사 업무와 대학원에서 학업을 병행하고 있었기에 육아까지 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또한 그 시기에 둘째를 출산한 아내가 육아 휴직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육아와 가사를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회사 일과 대학원 수업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해야지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야지 하면서도 실제로는 회사 일과 학업에 바빠서 집에 오면 밥 먹고 쓰러져 잠자는 게 거의 일상이었다.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어느덧 아내도 육아 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아내는 일 년 만에 일을 다시 시작하니, 다시 적응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일도 많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다. 나 역시 아직 대학원 과정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라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하여 어떤 것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내는 묵묵히 가사와 육아에 최선을 다했지만, 가끔씩 자기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감정이 폭발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만이라도 내가 가사와 육아를 함께 했다면 아내가 덜 힘들었을 텐데, 당시 나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게 되면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에 더 불을 지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불쌍한 두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내고 침대에 누웠지만 아내는 끝까지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양치질을 시켰다. 당연히 아이들은 엄마의 말을 듣고 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기 때문에 엄마에게 결국 혼이 난다. 그때 아내는 아이들을 혼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아내의 말투와 내용은 마치 나를 혼내는 것만 같았다. 어쨌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평소에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갑자기 엄마에게 혼이 나니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그러면 순간 우리 집은 아수라장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