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달린다.

by 노용기

"아빠 나 자전거 타고 갈래."

아이가 지난주 큰 이모에게서 받은 자전거를 타고 어린이집을 가고 싶다고 아침부터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소리치며 말한다.

'첫째가 자전거 타면 둘째도 자전거 타고 싶다고 할 텐데...'

사실 나는 첫째는 걸어가고 둘째는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 우선 유모차에는 아이들 가방과 이불 가방을 걸어서 갈 수 있는데, 자전거에는 걸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내가 가방 4개를 다 들고 가야 해서 조금 불편하다. 그리고 둘 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둘 중 하나만 끌어 줄 수 있는데, 보통 아직 혼자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둘째 자전거를 끌어주다 보면 첫째 아이가 많이 신경 쓰인다.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차도 많이 다니고 횡단보도도 있어 아무래도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 자전거는 내 손 안에 있지만 첫째 아이는 내 손 밖에 있기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고 신경이 쓰여 나는 첫째 아이가 자전거 타고 싶다는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안된다고 하면 첫째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으며 어린이집까지 갈 것을 생각하니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눈치 안보며 지금껏 살아왔는데, 6살 꼬맹이 눈치를 내가 이렇게 볼 줄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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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처음 아이에게 자전거를 사준 것은 아이가 2살쯤 되었을 때이다. 우연히 마트에 갔다가 자전거를 몇 번 타보고 자기도 타고 싶다고 해서 가격을 봤더니 10만 원이 넘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기본적으로 유모차나 카시트 등 살 것이 많고 내 의지와는 다르게 엄마의 의견대로 가격이 조금 나가더라도 좋은 브랜드의 제품을 사게 된다. 나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지출을 하는 것을 자제하자고 말하는 편이다. 첫째는 남들과 비교하며 비싼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고, 둘째는 어릴 때부터 너무 좋은 것만 쓰면 아이 교육에도 긍정적이지는 않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옷도 가능하면 얻어 입히고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 보자고 하는 편이다. (물론 나도 이 말을 하고부터는 회사에서 입을 정장 외에 주말에 입는 캐주얼 옷은 거의 사지 못하고, 책도 가능한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는 조금은 다른 입장이다.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한다고 하는 편인데, 나는 그 기본이 내 기준에서는 조금 높은 것 같아 타협점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나마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은 아이 자전거였다. 10만 원이 비싸다면 비싸고, 요즘 물가나 훨씬 좋은 해외 브랜드의 자전거를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비싼 아이 자전거도 많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둘째도 없었고 아이가 크면 곧 못쓰게 되는 자전거에 너무 큰 돈을 들이지 말자는 쪽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중고카페를 통해 3~4만 원짜리 자전거를 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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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처음으로 내 의견대로 중고 제품을 샀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다. 중고 자전거를 파시는 분 집이 우리 집에서 10분 정도면 차 타고 갈 수 있는 거리라 직거래를 했다. 그리고 자전거를 파시는 분 집안에서 자전거가 앞으로 가는지만 대충 보고 선뜻 현금을 지불하고 나왔다. 아이에게 자전거를 태운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지 1분도 되지 않아 핸들이 왼쪽으로 90도 정도만 돌아가야 했는데 180도까지 돌아가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사정을 말했으나, 결국 내 손을 떠난 돈은 다시 돌려받지 못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사이 내가 망가트린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 당시로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후로 다른 아이들이 삐까뻔쩍한 고급 자전거를 타고 갈 때 우리 아이에게 핸들도 잘 돌아가지 않는 고장 난 자전거를 태운 것이 못내 미안한 마음과 후회가 들었다. 작은 자전거였지만 아직은 아이가 어려 혼자서 타기는 무리였기도 했고, 혼자서 타다가 핸들을 마구 돌리다가는 핸들이 다시 망가질 우려가 있어 자전거는 항상 내가 끌어 주었다. 애증과 추억이 담긴 그 자전거는 몇 번에 고장과 수리를 거쳤고, 지인의 아이가 타던 자전거를 얻을 때까지 오래 버티며 타고 버렸으니 최소한 중고거래 가격인 3~4만 원은 뽑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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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두 번째 자전거는 핑크색 자전거였다. 핫핑크색에 하얀색 구름무늬가 들어간 매혹적인 자전거였다. 딸은 핑크색을 좋아하는데 핑크색 티셔츠에 핑크색 치마 그리고 핑크색 자전거까지 타면 스스로 핑크 공주가 된 것 마냥 행복해했다. 첫 번째 자전거와는 달리 두 번째 자전거는 처음에 발조차 페달에 닿지 않았다. 그래서 자전거 안장에 앉을 때도 항상 내가 아이를 들어서 앉혀줘야 했다. 그러다 어느새 아이 발끝이 페달에 조금씩 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내가 이제는 딸아이가 혼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시 아내는 육아 휴직을 하고 있었고, 나는 회사-집-대학원 등을 오가며 생활했기에 딸아이의 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금처럼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봄날 저녁 동네 앞 벛꽃구경이라도 가자는 아내의 말에 따라나섰다가 처음으로 첫째 딸아이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조금은 위태로워 보였지만 벚꽃이 만발한 동네 앞을 아이는 핑크색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 앞서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나에게 해 준말이 있다.

"당신이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젤 아쉬워~"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가 커가는 것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내 관심은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난 후 대학원에서 입학하여 오랜만에 하는 공부의 맛이 있었다. 아내는 육아휴직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가사와 육아는 아내에게 모두 맡기고 사회생활과 자기계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조금씩 커갔고, 나는 그러한 미세한 성장 흐름을 놓친 채 큰 줄거리만 겨우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아, 내가 또 삶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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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이는 세 번째 자전거를 타고 어린이집에 갔다. 아이가 많이 자라 큰 이모가 아이 체형에 맞는 자전거 하나를 선물해 준 것이다. 뽀로로가 그려져 있는 자전거인데, 아이는 처음에 "이젠 뽀로로는 시시해. 전에 핑크색 자전거가 좋아"하며 눈물을 보였다. "핑크색 자전거는 큰 이모 셋째 딸에게 줘야 해. 넌 이제 많이 커서 불편해." 하지만 아무리 설득을 해도 소용히 없었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계속 울며 전에 핑크색 자전거를 돌려 달라고 떼를 썼다. 그 옆에서 나는 허탈해했다. 육아휴직을 결정할 때 이유 중 하나가 나보다 뽀로로를 더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안경 쓴 펭귄이 좋다고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딸에게 심한 상처를 입고 육아휴직을 결심했는데...... '딸아, 너도 여자구나. 이 흔들리는 갈대 같으니라고...' 어쨌든 요즘은 터닝메카드나 시크릿 쥬쥬 등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아빠인 내가 좋다고 하니 다행이긴 하지만 핑크색 자전거를 돌려달라는 아이의 떼는 그칠 줄 몰랐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잠깐 뽀로로 자전거 앉아 보더니 승차감이 괜찮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은 어린이 집에 갈 때 뽀로로를 자전거를 타겠다고 하면서 씽씽 잘도 달린다.

"아빠 이 자전거 되게 편해. 그리고 엄청 빨리 달릴 수 있어. 잘 봐봐."

아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다리에 힘을 주어 앞으로 힘차게 나간다. 둘째 아이를 챙기다 보니 어느새 아이는 25m 앞에서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어린이 보호 펜스가 쳐져 있는 길이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코너가 나오기 때문에 나는 둘째 아이 자전거 뒤에 어른이 조종하는 손잡이를 잡고 첫째 아이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첫째 아이 자전거와 간격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았다. 어느새 첫째 아이는 코너를 돌았고 경사길을 만나자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내려가고 있었다. 내리막길 경사가 끝나면 다시 오르막 경사길이 있기에 내리막길 경사 중간까지만 브레이크를 잡고 그 후부터는 다시 페탈을 힘차게 밟아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엄청난 진화였다. 그 옛날 아이는 혼자서 평지는 위태위태하게 자전거를 타고 갔지만 내리막길은 무섭다고 나에게 항상 잡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오르막길은 낑낑대며 힘들어해서 나에게 자전거를 끌어 달라고 했는데, 오늘은 그 모든 길을 혼자서 자유자재로 달리고 있다. 아이의 세번째 자전거에는 자전거 뒷쪽에 내가 밀어주거나 방향을 바꿔줄 수 있는 손잡이가 없다. 세번째 자전거가 생기면서 딸아이는 완전히 내 손을 떠나게 되었다. 저멀리 혼자서 씩씩하게 자전가를 타고가는 아이의 뒷 모습을 보았다. 바로 아이의 커가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침부터 나의 가슴 한구석 찡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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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 나는 부산에서 지인이 결혼식을 하여 부산에 갔었고 아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롯데월드에 갔다. 그 날 저녁 롯데월드는 잘 다녀왔냐고 물어보니 첫째 아이가 대답했다.

"응 재미있었어. 근데 아빠, 이제 바이킹도 시시해~"

"그건 애들 바이킹이니까 시시한 거야. 어른 바이킹은 무서울걸?"

"어른 바이킹? 그런 것도 있어?"

"그럼, 엄청 무서워도 눈물이 찔끔 날 텐데."

그때 아내가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이제 얘도 키가 돼서 탈 수 있을걸. 어디 보자."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롯데월드 사이트에 접속하고 말을 이어갔다. "이제 바이킹도 탈 수 있고, 신밧드의 모험도 탈 수 있고, 후룸라이드도 탈 수 있네. 탈 수 있는 거 많네. 당신이랑 따로 가면 재밌어하겠다."

'벌써 우리 딸이 나랑 같이 놀이동산에 가서 데이트할 수 있을 만큼 컸구나.' 나는 기대가 되었다. 그 옛날 내 품에 안겨 젖병을 물던 때가 정말 엊그제 같은데... 조만간 딸아이와 놀이동산에 가서 또 얼마나 컸는지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amusement-park-237200_1920.jpg 딸아, 너가 자신만만 했다만 조금 무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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