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은 4월의 마지막 수요일이자 문화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데이트 코스를 짜기 시작했다. 데이트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각 시간대별 몸 컨디션을 고려하여 나름 과학적이고 정교한 코스를 만들었다. 우선 나의 데이트 상대는 공연을 좋아한다. 그녀는 지금까지 많은 공연을 보아 왔다. 공연을 고르는 기준이 까다롭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녀와의 데이트에 그저 그런 공연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내로 나가더라도 동네에서 보던 것과는 격이 다른 공연을 보여 주고 싶었다.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내 눈에 괜찮은 뮤지컬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낯익은 그림에 제목마저 마음에 들었다.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챙기지 시작했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날씨가 추워질 것을 대비하여, 그녀의 드레스에 어울리는 하얀 스웨터를 하나 챙겼다. 그리고 갑자기 길을 가다가 목이 마를 수 있으므로 작은 물병에 시원한 물을 담가 가방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혹시 그녀의 드레스가 음식물이나 기타 오물로 더러워질 수 있어 작은 티슈 하나와 여벌 옷을 챙겼다.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나와 동네 떡집에 들려 그녀가 좋아하는 인절미를 샀다. 인절미는 우리 증조할머니가 좋아하시던 떡이어서 할머니들 취향의 떡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그 떡을 원할 때마다 그녀의 나이가 의심스럽다. 우리는 떡 하나씩을 나눠먹은 후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역 근처 한 생과일 주스 가게에 들려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할 '수박 과일 주스' 1L를 사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참고로 그녀는 몇 달 전 나와 함께 그 주스 가게에 들려 파인애플 주스를 사 먹을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참 기억력이 좋은 여자다.
우리는 전철을 타고 혜화역 대학로로 향했다. 공연장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우리는 인파 사이를 지나 티켓 박스로 가서 표를 받아 들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오전 11시, 어쩌면 공연을 보기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좌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점점 이야기에 몰입하였다.
'너는 특별하단다' 줄거리...
너는 특별하단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매일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그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별'표를 붙여 주는데, 매일 늦잠 자고 친구들에게 놀림만 받는 주인공은 '똥'표만을 받는다. 그러던 중 그 마을에서 가장 큰 황금빛 별을 받기 위한 장기자랑 대회가 열린다. 매일 '똥'표만 받는 주인공도 용기를 내어 대회에 참가해 보지만 너무 떨려 제대로 발표도 못해보고 친구들의 놀림과 조롱만 받게 된다. 대회가 끝나고 낙담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한 친구가 찾아온다. 그런데 그 친구의 옷에는 '별'표도 '똥'표도 없다. 원래 별표와 똥표는 한 번 몸에 붙으면 안 떨어지는데 그 친구 옷에는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궁금해하는 주인공에게 친구는 다른 마을에 사는 목수 '엘리'를 찾아갔다 온 뒤로 내 몸에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게 되었다고 말해준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주인공도 용기를 내어 목수인 엘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엘리로부터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왜 자신이 특별한지, 살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대화를 마친 주인공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옷에 붙은 똥표가 모두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공연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감동을 받았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개선되지 않은 나의 어떤 모습 때문에 나 자신에게 실망했었다. 나에게도 별표와 똥표가 여러 개 있는데,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붙여준 별표와 똥표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공연을 마치고 우리는 배우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을 하였다. 좋은 공연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감동적으로 잘 보았다는 말을 배우들에게 전했다.
공연장을 나온 우리는 '차이나 팩토리'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그녀는 딤섬 대신 귀여운 판다와 핑크색 코를 가진 돼지 모양의 만두를 하나씩 접시에 담았다. 그녀는 행복해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해진다. 행복은 정말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만두와 딤섬 그리고 게살수프와 짜장면 등을 조금씩 맛본 후 아이스크림으로 식사를 마무리 했다.
나는 그녀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졸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한 시간 이상씩 땀을 흘리며 운동한 나보다 더 강인한 체력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레스토랑을 나와 버스를 타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경복궁에 도착하니 어느새 수문장 교대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배려로 우리는 제일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수문장 교대식을 마치고 우리는 천천히 경복궁 안을 둘러보았다. 문화가 있는 날이라 입장료도 없어서인지 많은 관광객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며 500년 전 궁궐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다.
우리는 경복궁을 빠져나와 궁궐 담장 밖에 놓여 있는 긴 의자에 앉아 아침에 샀던 떡을 꺼내 나누어 먹었다. 벌써 시간은 3시쯤 되었고, 슬슬 그녀가 지칠 시간이라고 생각되어 먹을 것으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생기가 돌았고, 행복한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오히려 지쳐가는 쪽은 나였다. 점점 발이 붓는 것같이 느껴졌고,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인지 계속 하품이 나고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활기찬 그녀를 보며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늘 데이트의 마지막 여정인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하였다. 예전부터 한 번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드디어 역사적인 첫 방문을 하게 되었다. 마치 작은 꿈을 이룬 듯 감동스러운 마음으로 미술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1층 로비에 들어서서 미술관의 공기를 흡입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그녀가 1층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기념품 샾을 보며 한마디 했다.
"어~~ 마트다 마트! 여기 마트가 있네!"
나는 그녀와 맨날 마트에서만 데이트했던 나 자신을 자책하며, 그리고 앞으로는 오늘처럼 문화 데이트도 자주 하리라는 다짐을 하며 그녀의 손을 이끌고 매표소로 향했다. 역시 문화가 있는 날이라 매표소에서는 표를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전시장을 아주 천천히 주의 깊게 둘러보았다. 외국에서 많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부러워만 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미술관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미술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예술 혼을 불러일으켜 주는 훌륭한 학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며 더 놀 수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내가 지쳤다. 그녀에게 미안했지만 오늘 계획한 데이트 코스를 다 돌기도 했고, 내 체력도 거의 바닥난지라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녀는 못내 아쉬워하며 전철을 탔다. 어떤 친절한 분이 그녀를 보고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그녀는 앉아서 잠시 정면을 응시하더니 정확히 10초 만에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가 편하게 잠들 수 있도록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내 어깨에 기대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어깨에서 끈적하고 축축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최근에 며칠 동안 둘째 아이가 열감기에 걸려 한 동안 집에서 같이 있어 어린이 집을 가지 못했고, 첫 째아이만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오늘은 둘째 아이가 오랜만에 어린이집에 갔고, 한 동안 어린이집에 열심히 간 첫째 아이와 데이트를 했다. 육아휴직을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다르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그들의 발걸음 속도에 그리고 그들의 먹는 속도에 맞춰야 한다. 천천히 걸어야 하고, 천천히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다 보면 시간이 다시 천천히 가는 것을 느낀다. 하루를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남은 육아 휴직 기간에도 천천히 나와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 아이들과 즐거운 데이트를 계속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