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뭐라도 제대로 이뤄내고 싶은 요즘
대학 시절 자취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이유를 자신이 자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엄마가 밥 해주고 빨래해 주는 것이 얼마나 공부할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인지 자취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를 거라 했다. 당시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므로 그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옛날 대학 친구와의 대화가 떠오른 건 요 며칠 전이다. 문득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 일은 너무 많은데 뭐 하나 내가 한 일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회사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한다. 야근을 안 하기 위해 일과 시간에 전력을 다해 일한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으며 동료들과 잡담도 하지 않는다. 물 먹는 시간도 아까워 물통을 책상 옆에 두고 일하기도 한다. 여기에 일하느라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병원 신세도 졌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화장실은 제 때 가야 한다.) 그렇게 일해도 회사는 야근족들을 편애한다. 아무리 일을 제 때에 끝내도 상사보다 항상 먼저 퇴근하는 나는 일에 대한 열정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야근하고 싶지는 않다. 가족들과 있는 시간을 불필요한 눈치보기 야근으로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나대로 열심히 일을 하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 퇴근하여 집에 오면 할 일이 많다. 저녁밥도 지어야 하고, 아이들도 씻겨야 한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때론 집 정리도 해야 한다. 물론 완벽하게 제대로 하진 못한다. 내 나름의 핑계지만, 회사에서 전력을 다해 일했기에 집에 오면 이미 녹초가 되기 때문이다. 매일 밥 짓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때론 분리수거도 하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싶지만, 매일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하는 날은 없다. 아니, 이 중에 한 두 가지만 제대로 해도 다행인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약한 체력과 정신력을 탓하곤 한다. 차라리 느긋느긋 하게 일하며 야근이라도 하면 회사에서라도 인정받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렇게 매일 야근하면 가족들에게는 더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회사와 집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래서 평일에 누군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반드시 아내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야근을 하지 않아서 인지 그리고 아내가 나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내는 지인들의 만남을 쉽게 허락해 준다. 그렇다 해도 일주일에 이틀 이상 지인들을 만나지는 못한다. 주로 한 달에 두어 번 주말을 이용해 만날 뿐이다. 그렇게 만나서는 이른바 관계 또는 네트워크이라는 것을 형성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저 예전부터 알고 지내온 지인들과 끊기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지인들 만나는 횟수를 조금 늘렸는데, 그렇게 지인들과 만남이 늘어나는 만큼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함도 함께 늘어만 갔다.
대학시절에는 뭔가에 몰입해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잘 안된다. 아마 대학 친구의 말처럼 이제 나도 엄마 없는 자취생처럼 집안일을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가사노동에 육아까지 더 해졌으니 시간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의 시간표는 대부분 30분에서 1시간 단위로 짧게 끊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책 한 권을 읽을라고 해도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다. 내가 매일 소위 말하는 스낵 컬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깊게 사유하지 못하고, 페이스북이나 1~3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에 빠진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이처럼 별 거 아닌 A4 1~2장 정도의 글을 쓰기 위해서도 적게는 1~2시간에서 많게는 4~5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제 나도 서른 중반을 넘었다. 그런데 회사일, 가사, 육아 그리고 자기계발 중에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만 같아 때론 두렵기까지 하다. 역사책을 보면 30대 초반에 전 세계를 정벌한 사람도 있는데, 나는 지구의 한 구석에서 매일 챗바퀴만 굴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시지프스의 저주를 끊을 수가 있을까?
그래서 오늘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보았다.
첫 째, 회사일을 더 줄인다. 어차피 상사들은 만족을 모른다. 대신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줄이고, 상사가 원하는 일을 하겠다. 나도 나이를 먹나 보다. 20대 때 이해되지 않았던 선배들의 행동들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왜 그들이 그렇게 정치적이었고, 가능한 한 필사적으로 일을 남들에게 미뤘는지 말이다. 일을 안 하는데 상사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정치라도 잘 해야 했기 때문은 아닐까?
둘째, 가사노동은 최대한 줄이고,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가사노동을 줄이는 방법은 집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내가 해야 할 가사노동을 기계에게 전가해야 한다. 몇 년 전 설거지하는 시간을 줄여보고자 큰 맘먹고 식기 세척기를 샀는데 꽤 쓸만하다. 이렇게 줄어든 가사노동의 시간을 가족들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사용하겠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 있는 절대적인 시간보다 먼 훗날 추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meaningful time)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겠다.
셋째, 자기계발 범위를 축소하고, 하나를 하더라고 오랜 시간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겠다. 직장을 다니며,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자기계발에는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루에 8시간씩 자기 계발하지 않는 이상 성과를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욕심을 줄여야 한다. 회사 생활을 위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자기 계발만 하겠다. 또 지금처럼 여러 가지 활동을 30분 단위로 끊어서 하지 않고, 최소한 2~3시간 이상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겠다.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보았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다. 항상 그렇듯이 계획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해도 계속 전진한다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시간은 유한하며, 내 주위를 둘러싼 나를 향한 각 사람들의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의 욕구를 읽고 조금이라도 만족시켜 주려는 약간의 노력은 하자. 언젠가 때가 되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이 날 인정하고 좋아해 줄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서른 살, 아직 꿈도 많고 그래서 욕심도 많은 나이다. 하지만 스무 살과는 차이가 있다. 이제는 나의 성공을 위해 자질구레한 일들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인정하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는 끈기가 필요한 나이인 것 같다. 그리고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미래지만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림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