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와 연봉 900만 원

감기처럼 불쑥 찾아든 서른 살의 사춘기

by 노용기

여기저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옷을 고르고,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진행자는 우리가 할 일을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설명은 30분 정도 이어졌지만, 사실 우리가 할 일은 앉았다 일어서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름이 호명되고,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졸업장을 받아 들고 서로에게 한 마디씩 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부터 "어이쿠, 4,000만 원이 넘는 졸업장인데 잘 간수해야겠다."까지 그렇게 우리는 지난 1년 6개월간의 MBA 과정을 졸업하였다.


졸업식과 뒤풀이를 마치고 서울 시내의 한 뒷골목을 거닐면서 아내가 물었다.

"마음이 어때?"

"조금 아쉽네... 그래도 회사 다니면서 유일한 낙이었는데..."


정말 그랬다. 일주일간 일속에 파묻혀 나를 방전 직전에서 구해준 것은 매 순간 신선한 자극을 주는 교수님들의 강의와 다양한 경력과 관점을 가진 동기들과의 토론이었다. 확실히 서른 살 중반의 나이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미 MBA를 마친 한 친구의 소개로 입학을 결심 하기까지 나는 'Why'와 "What?"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나는 왜 MBA를 하려고 하는가?'

'나는 왜 이 학교를 선택하였는가?'

'나는 무엇이 되려고 하는가?'

사실 이러한 고민이 없었다면 나는 수천만 원에 상당하는 졸업장을 받아 들고 깊은 허무감에 빠졌을지 모르겠다. 흔히 말하듯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조직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직급으로 오르기 위해 그리고 좀 더 좋은 조건의 회사를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왜 MBA를 하려고 하는가?'이다. 나는 대학시절 호텔관광경영학과를 졸업했다. 학과 명에 '경영학'이라는 이름이 들어 가 있었으나, 경영학을 배웠다고 하기엔 뭔가 빈틈이 많이 느껴졌다. 그래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온라인 수업을 듣기도 하고, 경제/경영 분야의 베스트 또는 스테디셀러를 읽거나 TED에 나오는 명강사들의 강연을 들으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싶었다. 그러나 왠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느낌이었다. 경영학의 토대가 단단하지 않다 보니 그 위에 아무리 트렌디한 경영이론을 쌓아도 곧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경영학에 대한 좀 더 단단한 기반을 갖추고 싶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경제, 회계, 재무, 마케팅, 전략, 협상, 조직행동론 등 서른 개에 가까운 과목들을 수강하면서 이룰 수 있었다.


그다음 질문은 '왜 이학교를 선택하였는가?'이다. MBA를 운영하는 학교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수백 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학교를 모두 갈 수는 없었다. 우선 MBA를 위해 나와 아내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한 후 아이들과 함께 해외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MBA 가치가 예전 같지 않아서 해외 대학을 나온다고 해서 내 미래가 크게 바뀌리라는 보장 없이 무리수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국내에서 수업을 듣지만, 혹시 가능하다면 국내 교수진뿐 아니라 해외 교수진으로부터 조금 더 다양한 시각을 가진 강의를 듣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다행히 국내에서 해외 MBA 과정을 들 수 있는 대학이 있었고, 한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호주, 핀란드, 독일 등 여러 국적의 교수님들로부터 보다 다양한 경영학의 이론과 사례들을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 질문은 '나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였다. MBA는 최고 경영자를 키워내는 과정이다. MBA 수업에는 이미 경영자 위치에 계신 분뿐 아니라 미래 경영자를 꿈꾸는 임원급과 팀장급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나는 현재 팀장도 아닌 팀원의 위치에 있다. 최고 경영자가 되려면 아직 몇 년의 경력을 더 쌓아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좀 더 글로벌한 경험을 쌓고자 해외 취업을 할 계획으로 해외 MBA 과정에 입학하였다. 국내 대학의 MBA도 훌륭하지만, 해외 취업을 위해서는 내가 다닌 MBA를 조금 더 인정해 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에서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뭔가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실력'을 얻고 싶었다. 그동안 회사를 다니며 몇 가지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내었지만, 가끔 그게 정말 내 성과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내가 이 회사에 속하지 않았다면 나 혼자서 해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 말이다. 물론 세상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함께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그러나 언젠가는 기존 조직에 기대지 않고도 사업이든 프리랜서든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 뭔가를 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MBA를 졸업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으로부터 1년 6개월 전 입학 때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해외 기업에 취업을 하지도 사업이든 뭔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리고 MBA를 졸업 후 나의 연봉은 반의 반토막 아니 그 보다 더 많이 토막 난 900만 원이다. 연봉 900만 원. 물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매달 나라에서 75만 원씩 받는 육아휴직급여라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마음으로 감사히 받고 있다. 그렇다면 MBA를 입학할 때의 목표는 사라진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마음이 조금씩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잠시 인생의 쉼표를 발견하고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고 싶었을 뿐이다. 그동안 너무 내지르기만 한 터라 더 이상 호흡을 들이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왜? 어찌 보면 내가 원하던 고지가 조금만 더 가면 손에 잡힐 듯 있을 것 같은데, 왜 나는 잠시 멈추었을까? 그나마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그 멈춤의 시작이 아마도 감기처럼 어느샌가 불쑥불쑥 찾아드는 '서른 살의 사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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