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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Apr 25. 2020

데미안, 니체, 그리고 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

데미안, 니체, 그리고 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데미안 - 


인생은 유한하다. 하지만 대부분 삶이 무한한 것처럼 산다. 그래서 계속 무언가를 모으고 쌓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돈과 지식이다. 여기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쏟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바로 자기만족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다. 대부분 부정하겠지만, 나는 대개의 경우 인정 욕구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자기 만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업적(?)을 누군가 알아주지 않았을 때 슬픔과 우울이 찾아온다면 결국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것은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런 것에 인생을 허비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언제 행복하고 언제 우울감을 느끼는지? 나의 욕망의 뿌리가 무엇이며, 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적정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이 정도 질문만이라도 명쾌한 답을 갖고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유한한 삶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살게 되고, 결국 인생에 끝에서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만 남을 수 있다. 


니체는 인생을 낙타-사자-아이로 구분했다. 낙타의 단계는 우리가 세상의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 살아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햇빛이 내리쬐는 사막에서 주어진 환경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걷는 낙타처럼 학교와 가정 그리고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순응하듯 따라간다. 그러다 그 가치가 삶을 살아가는데 정답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 온다. 이때 우리는 사자처럼 표효하며 세상의 가치를 거부하고 저항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방황을 겪는 시기이다. 이를 통해 기존에 갖고 있던 가치들은 마치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가듯 서로 뒤엉키게 된다. 그 격동의 때가 지나면 태풍 후 무지개가 찾아오는 것처럼 아이처럼 평온한 시기를 맞게 된다.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되고 어떠한 상황도 행복한 아이처럼 즐길 수 있는 단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장자는 이 단계를 도에 이르렀다고 하고, 불가에서는 깨달음의 경지 올랐다고 하며, 기독교에서는 성령 충만이라 부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차이가 크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명칭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 이 글을 읽을 때이면 사자의 단계에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다음 질문은 어떻게 아이의 단계로 갈 수 있는가이다. 아쉽지만, 답은 각자 찾아야 한다. 수많은 책을 읽고 선각자들을 만난다 해도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다. 만약 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답이 아니라 그 또는 그녀의 답이다. 결국 다시 낙타처럼 타인의 생각대로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책과 멘토가 필요한 것은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기 위한 재료 일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토네이도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이 세상의 다양한 시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용감한 사람이 되는 우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재료를 갖추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들을 섞어 내 혀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맛으로 요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자아실현의 길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데미안의 인용문으로 시작했다. 이제 글을 마칠 때인데, 다시 데미안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데미안 - 


나는 자아를 찾는 과정을 레시피라는 요리와 관계된 메타포를 사용 해 설명했다. 나를 찾는 그 길이 요리를 하는 것처럼 즐거운 일 일수도 있지만, 마지 광야를 걷는 것처럼 고된 여정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 여정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산티아고를 걷는 수행자들 수보다 많다. 그러니 지금의 어려움이 나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님을 인지했으면 한다. 그리고 언제가 그 길에서 당신과 함께 걷거나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알을 깨기 위한 힘을 내자!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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