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Routine*)의 즐거움

편하게 시작하는 루틴한 하루

by 노용기

최근 배우 하정우의 '책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는 걷기에 대한 그의 궤적뿐 아니라 영화와 인생에 대한 그의 생각이 녹여져 있다. 이 책에서 나의 주목을 끈 것은 바로 매일 반복적으로 걷는 그의 습관이었다. 한 예로 그는 영화사에 출근할 때면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매일 걷는 다고 한다. 강남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마포까지 매일 몇 시간 되는 왕복 거리를 걷는데, 이는 루틴처럼 굳어진 삶의 패턴이라 했다.


사실 루틴은 별게 아니다. 어릴 적 방학이 되면 항상 만들었던 시간표도 바로 루틴의 일종이다. 아침에 일어나 짧게 공부를 하고, 식사를 한 후, 다시 긴 시간 공부에 들어간다. 그리고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공부. 잠깐의 놀이와 휴식 시간도 있지만 공부 시간은 그에 비할바가 못된다. 그러다 저녁 9시가 되면 텔레비전을 뒤로하고 꿈나라로 들어가는 시간표. 이 시간표를 6년 넘게 만들었지만 단 한 번도 실행해 보지 못했기에 나의 기억에는 루틴의 흑역사로 기억이 되어있다.


이렇게 별게 아닌 루틴의 흑역사는 어른이 되어서도 영원회귀처럼 반복된다. 20대 대학생 시절에도 30대 직장생활 중에서도 나는 계획을 세우고 시간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계획과 시간표는 만들 때만큼은 나에게 기쁨과 충만, 그리고 때로는 희열까지 주었지만, 막상 실행단계만 들어서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회사 출근 전 영어공부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매일 늦게 일어나 제시간에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도 버거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하루 종일 실천력이 부족한 나를 괴롭혔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상당기간 자유를 느꼈다. 시간과 속박에 대한 자유로움에서부터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나'로부터의 탈출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점점 얼굴이 붓고 뱃살이 쳐졌으며, 머릿속의 지식은 점점 연기처럼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비체계적인 삶이 주는 당장의 자유는 초콜릿처럼 달콤했지만, 결과는 쓰레기 매립장처럼 내 삶에 폐기물들만 쌓여 가는 느낌이었다.


인생이 짧다고 생각했기에 반복적인 것보다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루틴을 거부하며 생경한 것을 쫒았지만, 그러한 삶의 패턴 역시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루틴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만 매일 아침 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그 날 생각했던 루틴을 하지 못해도 '그럴 수 있다. 내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넘기는 연습을 했다.


요즘 아침 일찍 일어나 경제 뉴스를 들으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몸 여기저기 워밍업을 마치면, 간단한 코어 운동에 돌입한다. 그리고 각 5분씩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과 기도에 몰입한다. 여기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영어를 공부라 표현했는데, 사실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시작하는 편이다. 무언가를 외우고 익힌다는 자세보다는 그냥 듣고, 말하고, 읽고, 쓴다. 마치 매일 연습하면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하는 막연함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어제 외운 것이 오늘 생각나지 않는다고 자책하지 않는다.


이러한 루틴이 요즘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루틴을 하다 보니 매일 조금씩 몸의 변화가 생긴다. 스트레칭을 통해 평소에 목과 허리 그리고 무릎에 약간씩 통증을 느꼈던 부분들이 줄어들었다. 명상과 기도를 통해 내 안에 부정적인 생각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또한 영어를 말하면서 안 쓰던 혀 근육이 생겼는지 영어뿐 아니라 우리말을 발음할 때도 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든다. 매일 부담 없이 하고 있기에 큰 발전이 있었다거나 한 것은 없다. 그저 매일 아침 일어나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을 때보다 기분이 조금 더 상쾌할 뿐이다.


그리고 최근 루틴을 하나 더 추가했다. 바로 지금처럼 주말에 한 주간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쓰는 일이다. 물론 이 루틴도 매주 하려고는 하지만 생각처럼 못할 때가 더 많다. 다만, 그때마다 자책하지 않고 가볍게 넘기려 한다. '오늘 못했으면, 다음에 하면 된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다음이 오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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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삶도 좋지만, 지루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 Routine:

1)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

2) (지루한 일상의) 틀, (판에 박힌) 일상


*출처: 네이버 영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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