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유익한 그것에 관하여
오늘날, 손에 잡히는 어떤 것이든 혼자만의 힘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없다. 과거에는 구두를 만들기 위해 개인의 역할이 중요했다. 가죽을 제단하고 발 사이즈에 맞게 제작하는 것이 장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이 모든 과정이 분업화되었다. 가죽만 제단 하는 사람. 발 사이즈에 맞게 제작만 하는 사람. 오늘날에는 과정은 더 복잡해지고 세분화되었다. 가죽을 구입하는 구매부. 구두를 모양을 정하는 디자이너. 만들어진 구두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마케터. 수익과 비용을 분석하는 재무팀 등 구두 하나를 만들어 판매하기 위해서도 팀 단위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러는 사이 우리는 스스로 혼자서는 무언가를 만들지 못하는 인류가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고통이 따른다. 잘 만들려고 하는 욕망과 실제 결과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잘 인내한다면 인생은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머리와 가슴, 그리고 손에서 창조된 결과물을 바라볼 때면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매일 주어진 업무를 겨우 마치고 퇴근 버스에 몸을 맡길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나는 가끔 글을 쓴다. 매일 쓰고 싶지만, 회사일과 집안일을 하다 보면 그런 삶은 당장 힘들다. 사실 이렇게 가끔 글을 쓰는 것도, 꽤나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도 회사에 별도 휴가를 내어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내게 금전적인 보상이 바로 뒤 따르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이 시간에 회사 노트북을 켜고 더 많은 메일을 처리하는 것이 돈벌이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있다. 바로 글 쓰기가 나 혼자만이 작업이 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 누군가에게 '글'이라는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할 필요도 없다. 글쓰기는 취미이므로 이 '글'을 잘 팔아달라고도 부탁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전문 작가가 되면 달라질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은 취미이므로 혼자만의 시간에 갇혀 글을 쓰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만들고 나면 '보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한 일 없이 글 한 편 쓴 것만으로 하루가 충만해 짐을 느낀 날도 있었다. 아마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작가들이 아침에 일어나 루틴(Routine)처럼 글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아침에 글을 쓰고 나면 점심과 저녁은 어떤 딴짓을 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느다.
직장은 우리에게 나름의 안정을 선사한다. 정해진 때에 때에 월급이 나오고, 그 월급으로 어느 정도 인생을 계획할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인생의 참 맛을 충분히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매일 반복되는 회사 업무로 특정 분야에 숙련된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숙련이라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어떠한 빛도 낼 수 없다. 특히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려운 나 같은 사람에는 더욱 그렇다. 이럴 때 취미 생활은 반쯤 부족한 내 삶을 채워주는 충전재 역할을 한다. 보통 취미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또한 가볍게 시작할 수 있고, 혹 그만두더라도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퇴근길,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면. 스마트 폰만 바라보는 내가 가엽게 느껴진다면. 취미 하나 정도는 가져보는 게 어떨까 한다. 어차피 직장 생활은 보통 30년이 최대이고, 그 후 30년은 취미로 보내기도 해야 하니 나름의 노후 준비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취미를 갖다 보면 직장 생활에 대한 시각도 조금은 바뀔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이렇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안정된 직장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회사에 대한 마음도 불만보다는 고마움으로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