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감정
나이가 들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것이 정신이 나약해서 인지, 체력이 저하되서인지는 잘은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힘든 상황에 부딪혀서일 수도 있다. 왠지 지금의 상황이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움이 든다. 그리고 저 어딘가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곳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상황을 벗어나면, 지금 내가 가진 고민들의 대부분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지금까지 그렇게 버거운 상황을 마주할 때면 조금씩 포기하고 도망쳤던 것 같다. 운동을 할 때도 푸시업을 20개까지 목표를 세웠지만 15개에서 힘이 부치면 그만두었다. 5개 더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무리해서까지 운동하는 것이 유익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자칫 무리한 운동으로 오지 않을 부상을 우려하기도 했다. '운동의 강도보다는 꾸준함이 중요하지'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렇게 힘든 순간에서 자주 멈추었다.
회사에서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이 밀려오고, 체력도 점점 떨어져 오고, 주위의 비판도 강해지는 순간이 한꺼번에 몰려온 적이 있었다. 당시 회사 출근할 때면 숨 조차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직한 직장에서 적응이 매우 어려웠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나에게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상사는 항상 부하 직원들에게 벼락 치듯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마다 나도 저렇게 혼날 날이 머지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새 회사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10년간 괜찮았던 위장도 다시 쓰려오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입술은 점점 검붉게 변해갔다. 정신질환 약을 고려할 만큼 힘든 시기를 보냈다. 결국, 건강악화를 우려한 나는 몇 달만 근무하고 다시 이직을 결심했다.
최근 임원 급에 있는 분들의 인생 스토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모두 다른 인생사가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나름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어려움을 뚫고 삶을 견뎌 냈다는 점이다. 나 역시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나이 탓인지, 정신력 탓인지, 체력 탓인지, 아니면 정말 부담이 큰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이 부친다. 다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차례 해 보았다. 다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이건 의미 없는 견딤이야. 너 자신을 불필요하게 소모하지 마. 정말 극단의 상황을 마주하면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어. 그땐 회복도 힘들 거야. 차라리 지금이 내려놓을 적기야.' 이런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1년간 꾸준히 턱걸이를 한 남자의 영상이었다. 처음 그의 몸은 왜소했다. 턱걸이도 겨우 2~3개 힘 들게 해냈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운동량을 소화해 냈다. 왜소했던 그의 등근육이 헤라클레스처럼 점차 우람하게 변해갔다. 그의 목표는 완전한 자세로 15개의 턱걸이는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목표를 위해 1년간 꾸준하게 턱걸이를 하며 동영상을 제작했다. 남들에게는 어떻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그는 그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에게 꾸준함의 힘. 그런 게 느껴졌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시간과 자원은 턱 없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문제와 마주해야 하는데 계속 회피만 하니 더 도망가고 싶어 진다. 어딘가에 있을, 아니 있지 않을 낙원을 찾아서 말이다. 아마 이렇게 도망치다가는 점점 더 힘든 상황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하고 결심했다. 다시 시작해 보기로. 작은 것부터 생각을 바꿨다. 푸시업을 할 때도 목표한 숫자는 채우기로 했다. 오늘이 그 첫날이고, 운동을 마친 지금 어깨와 팔 그리고 가슴 근육에 아직도 미세한 통증이 느껴진다. 회사에서 주어진 문제들도 일단 하나씩 마주하려고 한다. 사실 고통은 마주할 때보다 피할 때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오늘은 주말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고 일을 했다. 아마 당분간 고된 삶이 이어질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간 그 삶도 익숙해 지고, 나에게도 인생의 고난을 넉넉히 이겨낼 근육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해 본다.
'진짜 힘든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은 살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풀리는 법이다.'
'그치지 않으면 오래가고, 오래가면 효과가 있다.'
힘든 순간 만트라처럼 되새기는 구절들이다.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센 척하는 건 나에게 의미 없다. 그러나 어딘가로 간다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 그 순간에 문제와 더 마주하고 꾸준함의 힘으로 견뎌내 보려 한다. 효과가 있을지는 1년 뒤에 이 글을 다시 볼때즘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