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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May 23. 2021

좌절에 관하여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살다 보니 나에게도 많은 좌절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마다 나는 깊은 곳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일부러 더 깊은 곳까지 가기도 했었다. 바닥을 경험한 후에라야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떠한 낙심되는 일이 있으면 방문을 걸어 잠겄다. 그리고 헤드폰을 쓰고 우울한 음악을 들으며 한 동안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조금씩 기지개를 켜며 다시 햇살이 내리쬐는 곳으로 나왔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유전자가 전해져서 일까? 첫 째 아이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승부욕이 있는 것은 좋았으나 패배를 관리하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달리기에서 지거나 게임에서 지면 많이 속상해했다. 때론 눈물을 보이고, 때론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기도 했다. 내가 볼 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님에도 작은 패배와 좌절로 보이는 일에 많이 속상 해 했다. 그런 모습이 왠지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좋지 못한 유전자를 물려준 것 같다는 생각에 나도 미안 해 하곤 했다.


 아이가 크면서 조금씩 사물을 익혀나갈 때 즘, 우리 가족은 보드 게임을 했다. 처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블록을 하나씩 빼는 게임이나, 종을 빨리 치는 게임을 주로 했다. 그리고 더 성장했을 때는 두뇌를 써야 하는 게임을 하곤 했다. 두뇌를 쓰는 게임을 하면서부터 아이는 매일 게임에서 졌다. 그리고 매일 상심한 채 눈물로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한 번쯤 져줄 만한데 봐주지 않았다.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매일 패배하고 울고를 반복하면서도 승부욕을 있어서 인지 매일 밤 게임에 임했다. 그런 반복적인 날들이 오래 지속되었던 어느 무렵 변화가 일어났다. 


 그날도 아이는 게임에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는 게임을 포기하려 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 게임에서 진 다고 큰일이 나는 거 아니니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혹시 아니, 상황이 바뀔지?" 말의 힘일까?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고, 마지막 점수 계산에서 아이가 이겼다. 나는 봐주지 않았다. 온전한 아이의 승리였다. 그다음 달, 그리고 그다음 날도 우리 가족을 게임을 이어나갔다. 한 번의 승리 후에도 아이는 자주 게임에서 졌고, 중도에 게임을 포기하려 했다. 그리나 그 전보다 이기는 횟수도 조금씩 늘었다. 그리고 간혹 처음 게임에서 이겼을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지고 있던 상황을 역전하는 순간들도 종종 있었다.


 최근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아내 말을 들어보니 이사한 동네의 아이들은 공부를 잘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반에서 영어를 꼴등 했다고 했다. 나름 엄마가 아이 교육을 잘 챙겼으나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고민 중이다. 아이는 학원에 가게 되면 반 편성 시험을 본 후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과 한 반에서 공부할 수도 있어서 학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강요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서 점점 영어 수업의 난이도를 높이자 아이도 어쩔 수 없이 학원행을 선택했다. 반편성 시험을 마치고 결과는 예상대로 였다. 자기보다 세 살이 어린 동생들과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은 어두워 보이지 않았다. 전과 같았으면 낙심하고 우울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패배를 예상했었도 패배는 여전히 쓰기 때문이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도 아이가 반평성 시험 결과를 받고 낙심할 까 걱정했다 했다. 그러나 어릴 적 게임의 영향이었을까?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나는 온전히 아이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의 얼굴이 어둡지 않고 평소와 같이 밝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기도할 뿐이다. 아이가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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