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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Apr 17. 2021

그렇게 되어가는 것에 관하여

Where did rock and teen spirit go?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업무적인 부분들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왜 저 사람은 소신이 없을까? 할 줄 아는 것이 아부 밖에 없을까? 저렇게 무능한데 어떻게 저 자리에 올랐을까? 어떻게 기본적인 엑셀 기능도 모를 수 있을까? 왜 근무시간에 일을 하지 않고 부동산이나 주식 관련 뉴스를 보는 걸까? 등등. 당시 20대인 내 눈에 비친 40-50대의 모습이었다. 아직도 가끔씩 팀 원들 앞에서는 왕처럼 군림하다가도 임원 앞에서는 내시처럼 굽은 등을 하고 비유를 맞추던 팀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이 모든 현상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시 나에겐 일만 잘하면 되지 굳이 아부나 정치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루는 퇴근 후 동기들과 함께 회사 근처 호프집에 들렀다.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가게 입구로 회사 임원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동기들과 나는 금세 불편 해 졌고 임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동기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임원들 자리로 가 술 한잔을 받아먹고 왔다. 다른 동기들도 하나 둘 그 뒤를 따랐다. 나는 자리를 지켰다. 끝까지. 술을 다 마시고 주점에서 나오려고 할 때 한 임원과 마주쳤다. 그는 나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한 번도 인사하러 오지 않았던 나의 태도를 질책했다. 나는 그날 회사에서 그와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했다. 그런데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그 시간, 회사도 아닌 다른 장소에서 내가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이 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때 나는 그랬다.

 

 그 후 회사생활을 하면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윗사람의 의견에 반기를 들다가 여러 번 찍혔고, 업무 성과와 관계없이 진급은 번번이 누락되었다. 회사 시상에서는 실적으로 최우수 상을 받았지만 인사 평가에서는 좋은 결과를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당시 내 눈에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윗사람 말 잘 듣고, 술 담배 친구도 되어주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진급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래도 나는 정치나 아부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회사는 일하러 오는 곳이지 정치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뚝심을 계속 지켰고, 진급과는 계속 거리를 두는 상황이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실감하는 때가 되었다. 컴퓨터 활용 능력도 젊은 친구들 대비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밤늦은 자정까지 일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저녁 6시까지 일하는 것도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나이도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직급도 유지해야 하고, 내가 봐도 가끔은 하는 일에 비해 내 월급이 조금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을 대리 과장급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고 그러면 회사 입장에서는 연봉 몇 천만 원 정도는 절약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실력이 뒤쳐지고 노력도 예전만큼 할 수 없으니 최소한 윗사람들에게 밉보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도 점점 조직에 순응하게 되고 사람에게도 순종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전과 달리 임원들도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신입사원 때는 절대 군주로 보였던 임원들이 지금은 그 날의 먹이를 힘겹게 찾아 헤매는 늙은 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분들도 힘든 일이 많을 텐데 웬만한 거는 시키는 대로 하자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거 시킨다고 이러니 회사가 성과를 못 내지 하며 불평하던 것들이다.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갈 수도 있고, 그때 나를 지지 해 주지 않는 직원이 있으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불가능해 보이는 지시사항도 일단 해보겠다고 얘기하고 진행 상황을 보아가며 조정을 하기 시작했다. 참 많이 변했다.


 돈과 명예보다는 자유와 저항을 추구했던 내가 이제는 안정과 순응을 길을 걷고 있다. 나약해진 건지 성숙해진 건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가끔씩 예전을 그리워하며 Rock Sprit이 가득한 음악을 듣거나 콘서트 실황을 보면서 Teen Sprit을 충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내 몸 상태는 과거와 다르다.

그래서, 지금 가진 생각과 마음도 예전과 다르다.


직장을 그만두고 은퇴를 하면, 다시금 한쪽 귀를 뚫고 붉은색 머리로 염색을 할 수 있을까?

부조리에 분노하고 저항하며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청바지만 입은 꼰대로 남게 될까?


미래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 다른 것처럼,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와는 다르지 않을까 정도만 예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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