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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Jun 07. 2021

단기계획에 관하여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나는 가끔 아내와 산책을 즐긴다. 강을 따라 난 산책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내는 주로 과거에 대한 내용을 나누는 편이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어떠한 행동을 했던 부분이 잘했던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나중에 이런 걸 하고 싶고, 더 나이가 들면 해 보고 싶은 일들이 이런 게 있노라고 말이다. 보통은 이런 경우 현재에 머물라고 한다. 과거는 후회를 미래를 걱정을 낳기 때문이다. 

 

 미래가 희망찰 때도 있지만, 때론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두려움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려움은 나를 지킬 수 있는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났는데도 두려움이 없다면 물려 죽기 십상이다. 두려움은 그 상황에서 안전하게 대피하라는 신호를 주므로 인간에게는 꼭 필요한 신호 체계다. 다만 그 감정이 심화되어 공포에 질린 채 다리만 바들바들 떨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걱정이 앞설 때 그 걱정에 매몰되면 생각 자체에 눌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눌림을 경험하면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한데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럴 때는 뇌에게 거짓 신호를 보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다. 어차피 걱정 또한 거짓 신호 중 하나다. 내일 당장 일어날 일도 때로는 당장 오후에 비가 올지도 100% 맞출 수 없기에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거짓 신호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은 두려운 상황을 만날 때마다 가슴을 손으로 두드리며 읊조린다. "All is well. -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물론 이런다고 모든 일이 괜찮아 지거나 잘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환 걱정과 공포에 질려 몸과 마음이 눌리는 일은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머무르거나 주저하기보다 한 번 시도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싹틀 수는 있다. 사람에겐 희망이 필요하며 약간의 희망이라도 있으면 기대라는 것이 생기고 무언가를 시도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습관 하나를 바꿨다. 간혹 향후 5년 - 10년 앞을 미리 걱정하거나 계획할 때 일어나는 습관이다. 이런 생각이나 계획이 미래를 미리 준비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예측하기도 어려운 그런 먼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과정에서 눌림이 많았다. 참고로 요즘은 기업에서도 중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도 습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생각이 먼 미래를 향하고 있으면 - 예를 들면 40대 초반인 내가 은퇴 후를 걱정하고 있다거나 하면 - 순간적으로 당장 1년 후로 그 생각의 길이를 앞당겨 버린다. 그리고 1년을 1달로, 1달을 내일 또는 이번 주로 앞당겨 버린다. 그러면 막연하게 은퇴 후 뭘 해야 하지 하는 걱정과 고민에서 내일 또는 이번 주말에 뭘 하지로 생각을 전환하게 되고 생각이 점차 명료해진다. 


 가끔 은퇴 후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고 걱정하기 시작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글을 쓰고 난 후 출판사는 어떻게 접촉해야 할지. 그러다 세상에 수많은 작가들과 지망생이 있는데 변변한 글을 써보지 못한 나에게 전업 작가의 삶이 나에게 가당키나 한 일일지 등등의 생각으로 빠지게 된다. 결국 약간의 기대감으로 시작된 생각이 걱정의 블랙홀로 귀결된다. 그래서 그 거대한 검은 구멍에 빠지지 않기 위해 생각을 앞당기는 습관을 써먹어 보았다. 그래서 걱정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마음의 눌림을 이겨내기 위한 생각에 대한 글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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