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기 Jun 12. 2021

논쟁에 관하여

논리보다는 상대에 대한 관심이 먼저구나.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외부를 설득하는 것보다 내부를 납득시키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각기 다른 부서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부서는 팔 수 있는 재고를 더 많이 보유하길 원한다. 다른 부서는 재고 수준을 낮춰 비용을 절감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어떤 부서는 매출과 성장을, 다른 부서는 마진과 적정 현금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회사의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세운 목표들이지만 실무에서는 간혹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가 많다. 


 최근 내가 속한 부서를 대표해서 다른 부서를 설득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었기에 다른 부서도 이해를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해당 부서에서는 우리 측에서 제안한 업무를 추진할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아 실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뚜껑 열렸으나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설득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결국 다시 윗사람들의 결정사항으로 남겨두고 논쟁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자료를 준비하고 미팅한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화가 진행될수록 감정적으로 대처한 나 자신에게도 실망했다.    


 퇴근 후 피로한 몸을 이끌고 수영장에 갔다. 물속에 몸을 담그고 물속에서 수영을 하며 대화를 복기해 보았다.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해당 부서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답을 찾을 순 없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유튜브 몇 편을 보았다. 토크 쇼에서 검사 한 분이 나왔다. 드라마에서 보던 인상과 상반된 분이었다. 눈 밑에 애교 살도 있고, 한 마디로 웃는 상이 었다. 그분 말에 따르면 많은 검사들이 웃는 상이라고 한다. 오늘 하루 나도 저런 얼굴로 상대 부서와 대화를 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주말을 맞았다. 오랜만에 KBS 클래식 FM을 들으며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다. 류시화 작가의 '시로 납치하라'라는 책이다. 한 편씩 시를 읽어나가는 중에 다음의 시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저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물론 당신이 하는 말은 

옳다, 너무 옳아서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소음이다.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Don't Stand There Shouting on a Hilltop - 올라브 H. 하우게>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체를 관철시키기 위해 소음을 일으킨 것에 불과했다. 논쟁과 논리로는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고, 그 사람이 스스로 나서 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가끔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사장에게 바로 가서 내용을 보고하고 승인을 득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사장님이 승인했다는 말 한마디로 헤게모니를 쥐고 자신의 주장을 휘두르곤 하는데, 이 경우 겉으로는 협조하지만 속으로는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추진한 일이 잘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결국 논리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먼저인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때론 설득을 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유관부서와 대화에서 느꼈던 피로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여러모로 나를 돌아보게 했다. 가끔 나는 여러 상황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는 만트라가 있다. 일이 잘 안되고 있을 때는 "It's not your falut.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나를 몰아세우기 모다 잠시 쉴 틈을 준다. 그리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맡게 되었을 때나 두려움이 앞설 때는 "All is well. (다 잘 될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조금씩 용기를 불어넣는다. 앞으로 여전히 나 스스로가 부족해 보이고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스스로에게 해 줄 말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혹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