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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Jun 18. 2021

일의 목적에 관하여

말이 아닌 몸으로 하는 교육

 아버지는 몇 해 전 은퇴를 하셨다. 공무원으로 은퇴를 하셨고 정년을 모두 채우셨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오랜 기간 노부모와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들까지 건사하는 성실함을 보여 주셨다. 내가 군대에 있을 무렵 무리하게 일을 하셔서 출근길에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신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 후로 건강관리를 더 잘하셨고, 그때 무리해서 일을 했지만 아버지께서 속한 부처의 장관으로부터 상도 받으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매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인생을 사셨고 아름답게 은퇴를 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은퇴 후에는 편한 삶을 사시길 바랬다. 남들처럼 은퇴 후 해외여행도 다니며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드시기 바랐다. 오랜 기간 땀 흘려 일하신 아버지가 그 정도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누릴 자격은 충분히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 다시 이력서를 작성하시고 면접을 보시고 합격을 하신 것이다. 그렇게 은퇴 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시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년을 더 일을 하실 계획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달리 나는 그렇게 오래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회사를 다니는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위에 회사를 잘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분께 물어봤다. "회사가 적성에 맞으세요?" 그분은 황당하다는 듯 대답했다. "회사가 적성에 맞는 사람이 어딨어? 그냥 적응하며 다니는 거지.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이상한 질문에 당연한 답이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부터 직장 생활까지 뭔가 하기 싫은 것을 계속해오고 있는 느낌이다. 가끔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학교 생활이 재밌니?" 아이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답한다. "아니요!" 그때마다 생각해 본다. 인간은 언제쯤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도 꿈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조금 어렵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내게 주어진 의무를 내려놓기가 아직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때 막연하게 생각해 보았다. 은퇴를 하면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학생으로서의 의무,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은퇴 후에는 내려놓고 나의 본모습과 내 안에 가둬놓은 열정들을 다시 펼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최근 회사 가기 싫을 때마다 보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다. 바로 실직한 가장의 이야기다. 방송에 비친 그들의 삶은 측은해 보였다. 실직 후 어려운 시기에 가족이 힘이 되어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히려 가족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식들의 교육과 아내의 노후를 책임지지 못한 가장은 그 자체가 무능력이었다. 그런 영상을 보면 요즘 말로 뼈를 때리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어서 정신 차리고 집을 나서 회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많은 분들이 60 세 이전에 은퇴를 한다. 그리고 은퇴 후 삶을 미리 계획하지 못해 방황하기도 한다. 일이 없어 활력을 잃고 점차 노쇠해 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 나의 아버지는 어쩌면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신 것인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 노년을 편히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아버지는 매일 즐겁게 일터에 나가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으로서의 모범적인 모습을 아직도 보여 주고 계신 것일지 모른다.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말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안다. 잔소리보다는 몸으로 보여 주는 교육의 진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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