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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Jul 10. 2021

소풍에 관하여

인생을 소풍처럼 살 수 있다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 -


 인생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인생을 경주에 비유할 것이다. 남들보다 더 빨리 가거나 뒤처지는 경주. 또는 인생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으로 인생을 비유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을 '소풍'으로 비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성취는 어디까지 일까. 그 성취라는 것이 운이 좋아 역사에 한 글자로까지 남는다고 한 들 그것이 어떤 의미일까 가끔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런 성취를 이루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너무 패배주의적인 생각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을 보면 정말 인생을 소풍처럼 사는 것 같다. 가끔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기 위해 식빵을 먹곤 한다. 그냥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식빵 덩어리를 조금씩 뜯어먹다가 배가 차면 멈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순간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냉장고에서 쨈을 꺼내 식빵 위에 바르고 치즈를 그 위에 얹어 식빵을 돌돌 말아 롤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자신이 만든 것이 스스로 대견한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을 때이다. 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사물로 놀이를 만들며 언제나 즐거움과 흥이 넘치는 생활을 했다. 숙소 마당 정원에 있던 흙과 물을 섞어 접시를 만들고, 돌과 나뭇잎 그리고 실제론 먹지 못하는 몇 가지 열매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며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여름 성수기가 한 참 지난 해변에 가서 대부분의 어른들이 파도를 멀리서 쳐다만 볼 때도 아이들은 거침없이 바닷가에 들어가 옷과 몸을 적시고 놀곤 했다. 그 반면 나는 다른 어른들처럼 바닷가에 들어가면 옷이 적고 몸에 바닷모래가 묻고 그럼 찝찝하고 샤워를 해야 하고 빨래를 해야 하는 등 온갖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생각에 선뜻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 못했다.  


 인생을 살면서 공부도 해야 하고, 직장도 잡아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하고, 학교를 보내고, 결혼을 시키고, 손주를 봐줘야 하고, 등등을 하다 보면 어느덧 인생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집안일을 해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식구들이 모두 집을 나가고, 그때부터 집안 청소, 점심 식사, 장 보기, 그리고 저녁 식사 준비등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저무는 풍경을 보게 된다. 해야 할 의무들만 하더라도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짧다.  


 인생을 소풍처럼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해야만 하는 공부에서 잠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는 것. 평소와는 다른 정성 가득한 김밥을 자연을 벗 삼아 먹는 것. 내 것을 타인과 나누며 행복 해 하는 것. 일상을 벗어난 대화로 웃음 꽃을 피우는 것.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모든 걱정은 잊고 그날의 햇살을 온전히 느끼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소풍의 추억들이며, 이렇게 사는 것이 소풍처럼 사는 것이지 않을까 않다.  


 아내가 길을 걷다가 한 마디 한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웃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렇다. 길을 걷다 들리는 여고생들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내는 쾌활한 웃음소리. 아이들의 정신없이 뛰어노는 소리.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깔깔 대며 수다 떠는 소리를 들어 본 지 오래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몇십 년 전보다 경제적으로는 좋아졌는데 무엇이 우리를 누르고 있는 것일까? 오늘따라 어린 시절 소풍을 갔던 그 설렘과 행복했던 그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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