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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Jul 22. 2021

불평에 관하여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어느덧 새로운 직장에서 생활한 지 3년 차. 불평이 늘어간다. 점점 회사 안에서 경험도 쌓이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 처음 들었다면 철석같이 믿었을 말들도 이제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겉과 속이 다른 그리고 각자 살길만 찾는 사람들 틈에서 조금씩 현실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되고 그로 인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누적되면서 불만은 쌓여만 간다.


 인생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발생한다. 이른바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말이다. 때로는 나도 잘 모르겠는 내 '뜻'. 그 '뜻'대로 세상 일들이 이루어져야만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을 것만 같다. 동료가 인정을 받고 상을 받을 때 나도 그 자리에서 함께 받고 싶은 마음. 그러나 가능하면 내 할 말은 다하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여유는 모두 누리면서 그 영광의 자리에는 함께 서 있고 싶은 마음. 자녀들이 그리고 배우자가 내 '뜻'대로 움직여 주었으면 하는 마음. 친구들이 내 '뜻'에 따라 주었으면 하는 마음. 그러나 인생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허다하고, 심지어 내 '뜻'대로 되더라도 그 '뜻'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일 또한 빈번하다.


 영화 '도쿄타워'에서 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매일 술을 마시며 주정 부리는 아빠. 그날도 그는 술을 진탕 마시고 와서 엄마에게 그만 뱃속 안에 있는 모든 오물들을 쏟아낸다. 엄마는 그날로 아들을 데리고 고향집으로 내려간다. 식당일과 집안에서 부업을 하며 지내지만 인생을 담담히 다시 시작해나간다. 그 사이 아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도쿄로 떠난다. 타지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틈틈이 돈을 부치지만 아들은 그 돈을 이리저리 탕진해버린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저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러니"정도로 안타까워할 뿐이다. 그리고 엄마도 다시 한번 더 인생을 열심히 살아볼 테니 아들도 힘을 내라고 말한다.

 

 영화 속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는 '키키 키린(Kiki Kirin)'이라는 배우다.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도쿄타워 외에도 어느 가족,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등 주옥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내가 본 영화에서 그녀는 주로 힘겨운 삶 속에도 진득하게 살아나가며, 인생의 불행들은 툭툭 쳐내고, 소소한 행복들을 극대화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실제 삶도 영화 속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보통의 여배우들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지 못했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결혼했지만 오랜 기간 별거를 하며 지냈다. 60세에 이르렀을 때는 왼쪽 눈이 실명이 되었고, 유방암에 걸려 10년 넘게 투병생활을 한 후 생을 마감했다.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가 만약 비슷한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는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직업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에서 남들보다 선천적으로 부족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고 오히려 무게처럼 느껴진다면, 갑작스럽게 신체의 일부를 잃거나 건강이 악화되어 통증을 달고 살아야 한다면 말이다.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최근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은 삶, 병(病), 늙음, 사람, 인연, 집, 직업, 죽은에 관하여 그녀가 생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을 발췌하여 구성되어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런 책을 읽는 다고 그녀의 생각과 삶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불평이 쌓여가고 있는 나를 포함한 그 누군가에게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中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도서출판 항해]


"내가 가진 걸로 어떻게는 해 나가는 거죠."


"지금 이 모습도 나름 즐겁지 아니한가."  


"병에 걸려서 좋은 게 있습니다. 상을 받아도 시샘받지 않고, 말을 좀 잘못해도 아무도 책망하지 않아요. 싸울 힘이 없으니 좀 겸손해지기도 하고요."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지려면 혼자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이란 늘 존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는 것!"


"실패하면, 실패한 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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