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기 Jul 24. 2021

물고기와 알에 관하여

이불 밖은 위험해! 그러나 이불 밖으로 나갈 준비는 할 수 있지!

 이상한 제목이다. 물고기와 알에 관하여라니. 제목을 쓰고 나니 불현듯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참고로 제목이 이상해서 궁금증은 들었으나 실제 관람은 하지 않은 영화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켰을 때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영화 프로그램에서 그 영화를 소개해 주었고, 그제야 영화 제목에 대한 이해가 되었다.


 물고기와 알에 대해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아직 내가 그것을 충분히 깨우치지 못한, 그저 다가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소개 프로그램처럼 지금까지 생각한 주요 부분만 정리하여 써 내려보고자 한다.  


 오늘 아침 한강을 따라 달리기를 했다. 기온은 35도, 습도는 55%, 그늘은 없었다. 한강을 달리다 우연히 물고기 한 마리가 수면 위로 점프하며 떠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첨벙하는 물소리와 함께 원을 그리며 물결이 쳐내려 갔다. 평소에도 몇 번 보았던 장면이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마 날씨가 더운 탓에 잠시 환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우선 물고기가 왜 수면 위로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물고기의 세계는 수면 아래에 있다. 그곳에는 물고기는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이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물고기는 자기가 사는 세계 밖의 세상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물고기지 싶다. 수면 위의 세상은 위험하다. 수면 위에서 물고기는 숨을 쉬지 못한다. 즉, 습지를 벗어난 지렁이가 오늘 같은 뙤약볕 아래서 죽음을 맞이 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두 명의 세계적인 CEO들이 우주여행을 마치고 귀환했다. 버진 애틀란틱의 CEO 리처드 브랜슨과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 잘은 모르겠지만 그 둘은 지구에서의 모험은 이제 해볼만큼 해 보았고, 더 큰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나 싶다. 우주는 우리가 사는 지구와는 다른 세계다. 물고기가 수면 위로 나가는 것처럼, 인간이 우주로 나가게 되면 산소가 없기에 죽음에 이를 수가 있다. 모험심, 탐험가 정신, 그리고 꿈을 이루는 것 등 형이상학적인 부분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서 우주복과 우주선이라는 '도구 또는 장비'가 필요가 필요하다. 아마 내가 오늘 봤던 물고기도 어느 착한 어부가 투명한 어항에 물고기를 담아 이 세상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난 후 다시 한강으로 보내준다면 어느 정도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이 것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문장들이다. 모두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넘어선 세계에 다다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기 주위를 둘러싼 알을 깨고 나오고 싶어 한다. 오늘 나와 마주쳤던 한강의 물고기처럼 수면 위의 세상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수면 위의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당장은 위험한 세상이다. 목숨을 앗아갈 만큼.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호주라는 나라를 부르는 별칭이 있다. 바로 '아웃백(outback)'의 나라 호주다. 지금도 호주의 주요 도시는 해변가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내륙지역에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오지로 남아있다. 바다(out)를 바라볼 때 그 뒤쪽 지역(back)은 호주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호주를 발견했던 서양인들은 이 내륙지역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그래서 그 지역들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1차 시도. 2차 시도. 초기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갔고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탐험은 계속되었고, 조금씩 호주 지형에 대한 궁금증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최근 '키키 키린'이라는 일본의 노(老) 배우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녀는 배우의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성격이 다소 괴팍하고 고집이 있어 배우를 계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부동산 임대업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자산을 늘려나갔다고 한다. 물론 그녀는 말년에 십 년 이상 암투병을 하면서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영화 촬영에 임했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른 살 무렵, 늦은 사춘기를 접했다. 그때, 데미안을 다시 읽었고 알을 깨고 나오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학에 관심을 조금씩 가지게 되면서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듣게 되었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통해 낙타-사자-아이의 비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동굴을 벗어 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아이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질문만 하고 답 없이 몇 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한강에서 마주친 물고기를 보며 위에서 서술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강을 따라 달리며 땡볕에 노출되어 죽어가는 지렁이를 보았다. 습지에 머물러 있었으면 죽음은 면했을 것이다.


 죽음은 두렵지만 언젠가는 죽음은 맞게되기에 죽음 때문에 알을 깨고 나오는 행위, 동굴을 벗어나 진짜 세상을 마주하는 변화, 사자에서 아이로 변신하는 전환의 과정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알을 깨고 진짜 세상을 마주하라는 타인의 말만 듣고 동굴을 나올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건 아무 준비 없이 수면 위로 나오는 것이며, 우주선과 우주복 없이 우주를 탐험하는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50세가 되어서야 하늘의 뜻과 명을 깨닫게 되었다고. 새로운 세상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 세상으로 무작정 뒤쳐나갈 생각보다 적정한 '도구와 장비’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 하루였다.


(요즘은 무작정 퇴사 트렌드도 조금 추춤하는 듯하다.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준비의 과정도 나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해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평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