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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Nov 01. 2021

양면성에 관하여

Both Sides Now

 장님 코끼리 만지든 한다라는 말이 있다. 눈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여럿이 모였다. 그들 각자는 커다란 코끼리의 몸을 어루만지며 코끼리가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함께 모여 각자가 생각하는 코끼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코끼리는 동일한 한 마리였는데, 각자가 말하는 코끼리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던 것이다.


 장님만 그럴까? 우리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산다. 인생에 대한 관점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각자 다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그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근거를 자신의 생각에 끼워 맞추기까지 한다. 물론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자기 주관을 가지고 인생을 밀고 나가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의 다양한 관점을 간과하는 경우도 발생함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나의 길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성사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것을 정답으로 알고 오랜 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했지만, 사회는 아직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것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가 있다. 또는 운이라는 것이 따르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고, 현재의 상황뿐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 들까지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내 나이 마흔이니 몇십 년 전의 이야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회사에 문을 두드렸다. 나의 전공과 적성에 잘 맞는 직장에서 채용공고가 나왔다. 게다가 연봉도 높았다. 기대감이 컸고, 철저히 준비를 해서 채용 과정에 임했다. 서류를 합격하고, 우여곡절 끝에 1차 면접까지 합격을 했다. 마지막 임원 면접만 통과하면 드디어 오랜 백수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다. 최종 면접을 보는 날, 면접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전화기를 꺼 놓았다. 그리고 면접장에 10분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면접 준비 담당자으로부터 들은 말은 다음과 같았다. "임원 분들께서 오늘 면접을 일찍 마치셔서 면접이 이미 종료되었습니다. 근데, 전화는 왜 안 받으신 거예요?"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기대도 컸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여러 번의 낙방을 거쳐 그 해가 저물어가는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한 군데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고, 다행히 그다음 해부터는 직장이란 곳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위에서 언급한 회사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듣게 되었다. 내가 지원했던 사업이 대내외 사정으로 철수를 했고, 사람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는 내용이었다.


 인생이란 게 그런 거 같다. 사랑처럼 달콤한 것도 없을 것 같지만 사랑처럼 쓴 것도 없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따뜻한 온기를 느낄 때도 있지만 반대로 원수보다 못한 냉기를 느끼는 경험도 하게 된다. 반대로 인생에서 마주치는 고난은 사람을 참으로 힘들게 하지만 그 고난을 어떻게든 통과하면 어느덧 전과 다르게 성장 해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다음은 1969년에 조니 미첼(Joni Mitchell)이 발표한 Both Sides Now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다.


 I've looked at life from both sides now from win and lose.

 나는 이제 삶을 두 가지 측면에서 다 볼 수 있어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고요.


 우리가 삶에서 일어 나는 일들에 대해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정의 내리고 하는 것들이 한 가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어떨까? 인생의 괴로움 뒤에 숨겨져 있는 희망이라는 선물을 볼 수 있고, 좌절 뒤에 이어질 기회를 볼 수 있고, 달콤한 뒤에 감춰진 칼날을 볼 수 있다면. 진정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이런 인생의 양면성을 볼 수 있음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나는 언제 즘 저런 고백을 해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I've looked at life from both sides now: 나는 이제 삶을 두 가지 측면에서 다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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