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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Feb 23. 2022

조증과 우울증 그 사이 어딘가.

우울증에서 벗어나 행복해 지기. 

 최근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은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우울하게 살아가는 네 남자가 나온다. 이들은 역사, 체육, 음악, 심리학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사로 의욕 없는 학생들을 상대하며 그들 자신도 점차 열정이 사라진 채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은 인간에게 부족한 알코올 농도 0.05%가 채워지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을 듣고 실험에 들어간다. 그렇게 수업 시작 전 0.05%의 알코올 농도를 채울 정도의 미량의 술을 마시고 학교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결과는 놀랍다. 수업은 점차 활기를 띄어가고, 아이들의 수업 참여도는 점점 높아져만 간다.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가 있다. 내 삶에 큰 문제는 없지만 활기가 없어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부른 소리라 할 수 있다. 가족들이 아픈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뭔가 행복하지 않고 내 마음 한구석에는 우울함이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과 진정성 없어 보이는 말들만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그러던 차에 '어나더 라운드'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고, 마치 내 얘기처럼 느껴졌다. 이 영화에서 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를 걸어보았다. 영화가 중반으로 다다를 때까지도 나도 한 번 알코올 농도 0.05% 가설을 믿어보고 내 삶에 적용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일부 비극적인 결말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 방법 또한 해결책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행복 호르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 호르몬이라 하면 우리가 잘 아는 엔돌핀부터, 세르토닌, 도파민, 다이돌핀, 옥시토신 등이 있다. 엔돌핀은 잘 알듯이 웃을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엔돌핀은 통증을 줄여주는 모르핀의 몇 백배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할 만큼 우리 몸의 치유와 행복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호르몬이다. 게다가 사람은 실제로 웃기거나 하지 않아도 거짓 웃음과 표정만으로도 엔돌핀이 나올 수 있다고 하니 시도해서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세르토닌은 햇빛을 쬐거나 음식을 꼭꼭 오래 씹어먹을 때 나온다고 한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숲길을 걸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면 세르토닌이 분비되고 있다는 신호다. 도파민은 무언가에 집중할 때 나온다고 한다. 게임이나 도박 등에 집중할 때 분비되며 이 역시 행복에 영향을 주지만 과하면 좋지 않다고 한다. 다이돌핀은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분비된다고 한다. 종교적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인생의 진리를 깨우쳤을 때, 다이돌핀이 분비되고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옥시토신은 사랑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키스할 때, 아이를 포옹하고 있을 때,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쓰다듬을 때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행복 호르몬을 알게 된 다음부터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웃는 표정을 짓고, 스스로를 햇빛에 노출시키며 행복 호르몬이 나오기를 기도했다. 이러한 나의 행동은 즉각적으로 행복감을 높여 주는데 실제 도움을 주었다. 다만, 그 효과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조커처럼 웃는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표정은 몇 분이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고, 현실의 어려움을 마주하면 다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분비되는 것 같았다. 효과는 있지만 현실의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한계가 보이는 방법이긴 했다. 


 마음 한구석에 우울감이 계속 자리한 상태에서 삶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 노트를 꺼내 들어 적어 보았다. 나는 왜 우울한가? 우울의 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마치 일상적인 삶에서 알코올 0.05%가 부족하듯, 0.05%의 조증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우울한 이유를 생각해 보니 가장 큰 원인은 내 안에 소망, 즉 인생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좌절을 겪었다. 그때마다 무언가를 이루게 해 달라고 소원했으나 번번이 좌절을 했다. 기대도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기대를 내려놓았다. 기대를 하지 않다 보니 좌절감은 줄어들었지만, 뭔가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소망과 기대감이 넘치는 삶이 아니라, 아무런 기대가 없는 무미건조하고 우울한 삶이 이어졌다. 


 기대감은 나쁜 걸까? 기대감이 안 좋은 이유는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크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기대를 했을 때 잘 되면 기쁨은 더 크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는 변수가 너무 많아 내 기대처럼 될 확률보다 되지 않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내 뜻대로 상대방을 설득하기도 어렵고, 그 외에도 상황 변수들이 많아 기대한 대로 이루어질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실망감을 줄이기 위해 기대감을 줄이는 방법을 써왔던 것 같다. 


 그렇다고 기대감 낮추거나 기대감 없는 삶이 좋은 것일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잘 될 수도 있다. 학창 시절 잘못을 했을 때 선생님에게 매우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매를 맞으며 혼난 적도 있지만 단순 훈방 수준에서 넘어간 적도 많았다. 또한 원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성공을 경험 한 적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성공의 그 기쁨을 누리는 기간이 매우 짧다는데 있다. 사실 성취감보다는 기대감이 좀 더 오래간다. 예를 들어 내 경우에는 간절하게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그걸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며 기다린 행복감이 오래갔지 막상 그 물건을 소유했을 때 얻는 행복감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못한 적이 많았다.


 그렇다면 결론은 기대감이 있어야 행복하고 이러한 기대감을 오래 가져야 행복한 기분을 오래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대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의 실망감이다.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보통 우리가 실망감을 느끼는 이유는 Plan B나 C, D 등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더라도 Plan B 이후의 계획이 있으면 실망감을 줄일 수 있고 바로 다른 대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또 다시 기대감을 갖고 일을 추진하다 보면 이번엔 실패를 딛고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잘 안되면 Plan C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대안이 많다 보면 실망감을 줄일 수 있다. 참고로 최근 한 스타트업 CEO의 이야기를 들었다. 투자를 받기 위해 많은 곳을 찾아다녔는데, 예상대로 수많은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굉장히 많은 대안들이 있었기 때문에 실망할 시간에 하나씩 목록을 지워나가며 다음 목록을 실천해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결국 투자를 받게 되었고 지금은 상장을 앞둘만큼 회사를 성장시켰다고 했다. 


 요즘 나는 실험 중이다. 알코올 0.05%의 실험은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이 실험 대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일어날 좋은 일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물론 매일 회사로 출근하는 것은 나에게도 고역이다. 그러나 오전 근무를 마치고 맛있는 점심을 먹을 기대를 해보고, 후식으로 달콤한 음료를 마실 기대도 해본다. 음료를 마시며 따스한 햇살 아래 걷는 기대도 해보고, 퇴근 후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빔프로젝터를 켜고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를 보는 기대도 해본다. 물론 기대처럼 점심 식사가 맛이 없을 수도 있고, 야근으로 인해 영화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Plan B가 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 그리고 주말도 있으니, 주말에는 캠핑을 가볼 기대도 해보고, 호수에서 카약을 타는 기대도 해보며 인생을 행복하게 보낼 추가 계획들을 세워본다.


 이러한 기대감을 가지면서 인생이란 것이살아 볼만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씩 내려놓고 내 인생이 앞으로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지금보다 행복한 일이 더 많아질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물론 기대한 대로 이루어 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기대를 하는 동안은 행복하다. 그리고 기대한 대로 되지 않더라도 Plan B, C, D만 잘 세워놓으면 마음이 놓인다. 이러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적응만 된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조금 더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엉클 바냐(Uncle Vanya)라는 연극을 보았다. 극의 말미에서 바냐의 조카인 소나(Sonya)는 말한다. "우리에게 주는 시련을 참아내요.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연극도, 사랑도, 그리고 우리의 삶도 계속 될 거예요." 그렇다. 인생에는 시련과 좌절이 따른다. 그러나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따스한 햇살 아래서 일어나 어머니가 끓여 주시는 된장국과 갓지은 밥을 먹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산다면 인생은 살아볼만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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