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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Aug 04. 2022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4개월 다니고 이직한 경험담

 최근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대퇴사의 시대에 부응한 것은 아니다. 새로 이직한 회사와 여러 가지로 맞지 않아서 그만두었을 뿐이다. 문제가 된 것은 새로 이직한 회사를 다녔던 기간이다. 정확히 4개월 하고 1주를 다녔다. 

 

 회사를 무작정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트라우마가 있는데, 10여 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넘게 백수 생활을 하며 생긴 기억이다. 그 이후부터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이직 자리를 알아보고 그만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이직의 과정이 여느 때와 달리 참으로 어렵고 힘이 들었다. 면접 자리에서 반복되는 질문, 왜 4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느냐? 에 답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답변 자체보다는 퇴사 이유와 관련된 계속되는 질문과 결국 '너 우리 회사 와서도 마음에 안 들면 몇 달 다니고 그만둘 거냐?' 하는 선입견으로 귀결되는 상황이 날 더 힘들게 한 것 같다. 물론 회사 측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도 아니고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이직 자리를 알아보는 내가 좋게 보였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의 글을 보았다. 그/그녀 역시 몇 개월 다니지 않은 회사를 뒤로하고 수 차례 이직 면접 끝에 합격을 했다. 그분의 결론은 모든 회사에서 이직의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나 나쁜 회사에서는 이직의 이유만 가지고도 면접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좋은 회사에서는 한두 번 이직의 이유를 묻고 그다음부터는 경력 및 그간의 성과 등 면접의 본론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최근 나 역시 몇 개 회사와 면접을 보았고 그중에 최종 합격을 하였다. 그중에 대비를 보여 주는 두 회사가 있었다. 한 회사는 패션 분야의 L사이고, 다른 한 회사는 IT 분야의 G 사였다. L사는 대표님 면접에서 이직 사유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고, 나름 성실하게 답변했으나 대표님의 결론은 "면접에서야 무슨 말을 못 하나?"였다. 그리고 G사에서도 역시 이직 사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으나 한 번의 질문으로 끝이 났고, 바로 리더십에 대한 Bahavioral Questions이 계속 이어졌다. 참고로 L사는 좋은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명망 있는 회사이나 사내 여러 가지 이유로 직원들의 퇴사가 잦은 곳이었다. 그리고 G사는 누구나 입사하고 싶은 글로벌 기업이었다. L사와 G사 모두 좋은 회사이긴 하나, 한 회사는 직원들의 잦은 퇴사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고, G사는 한 번 입사하면 사람들이 잘 나가지 않은 회사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몇 차례 면접을 보면서 최근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의 탕웨이 대사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는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4개월만 다니고 회사를 이직한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좋게 보일 리는 없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그 회사를 제외하고는 이전 회사들에서는 열정을 가지고 성과를 내며 회사에 기여한 이력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L사에 최종 합격하였지만 입사하지 않았고, G사에는 최종 합격을 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회사에 합격하여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합격한 그 회사에서는 면접을 보는 동안 나를 좋게 봐주었고, 처우 협상에서도 어려움 없이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셨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부득이 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끔씩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너무 힘든 상황 때문에 자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낫다고. 이렇게 회사를 그만두게 된 후에 어쩔 수 없이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직장생활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수많은 면접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때 가능하면 나의 약점에 집중하는 나쁜 질문을 하는 회사보다는 나의 강점을 설명할 기회를 주는 좋은 질문을 하는 회사에 입사하길 바란다. 그리고 최종 합격 후 협상 과정에서 나의 과거를 거론하며 처우를 낮추려는 회사보다는 정해진 조건에서 최대한 좋은 대우를 해 주려는 회사에 입사하길 바란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직원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나쁜 회사도 있고, 여전히 직원을 동료로 존중해 주는 좋은 회사도 있다. 그리고 지나간 일은 돌아보지 말고 나를 한 구성원으로 배려해 주는 회사에서 다시금 열정과 성과로 보답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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