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기 Aug 16. 2022

이젠 뭔가 해 보고 싶어 졌습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나. 

 오랜 전의 일이다.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 아저씨 한 분이 비탈진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땀으로 옷은 젖어 있었고, 숨을 헐떡거렸지만, 산 정상에 오른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띄어져 있었다. 방송에 따르면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암에 걸려 몇 달 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그가 오직 살고자 하는 의지로 온 힘을 다해 산을 두 팔과 다리로 기어오르듯이 등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간 산에 오르면서 점점 두 다리로만 오를 수 있게 되었고 암도 점차 완치되어 이제는 예전보다 더 건강해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했다.  


 오래전 일을 잘 떠올리지 못하는 데, 그 방송은 가끔 기억이 나곤 한다. 나도 만약 건강이 안 좋아지면 산에 오르겠다고 각오를 했던 것 같다. 


 번아웃으로 몇 년간을 무기력하게 보냈다. 말 그대로 번 아웃이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매일이 무기력했으며, 아침마다 기도 제목이 오늘도 무사히였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보니 사회생활을 잘해 내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최근 잠시 일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처음에는 여름휴가 기간과 겹쳐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녔다. 석양을 바라보며 해변을 걷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 그림자 밑에서 책도 읽고 잠도 자기도 하였다.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다 앞서 언급한 방송이 떠올랐다. 하지만 번아웃이라는 단단한 알껍질을 깨고 나오기에는 내 체력과 마음이 아직 단단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래서 한 동안은 오래 자고, 적게 먹는 것에 초점을 두고 쉼을 이어갔다. 번아웃 기간 불면증과 소화불량 그리고 디스크 통증까지 경험한 탓이었다. 그렇게 집에만 있다 보니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집 근처에 작은 산이 하나 있는데 둘레길로 한 번 걸어 보는 것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산책 겸 산을 찾았다.


 그렇게 조금씩 등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둘레길. 그다음에는 중간까지만 오르고 내려왔다. 지금은 가능한 정상까지 가보려고 한다. 그렇게 며칠을 오르다 보니 산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몇 년간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체력이 쌓이니 마음도 조금씩 변해 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산에 오르고 싶다가 그다음에는 20층이 넘는 아파트를 엘리베이터 없이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전에 내려놨던 글도 다시 쓰고 싶어졌다.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가 있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시작조차 못했던 것도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어쩌면 시간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체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불과 몇 주전까지만 하더라도 시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무의미하게 누워서 스마트폰 검색만 했었다. 기력이 없다 보니 무언가를 시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쉬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못된 방법이었다.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휴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눈을 혹사시키며 시력만 떨어뜨렸던 것 던 같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처음 2주간은 충분히 휴식하고 적게 먹으면서 몸을 쉬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라고 한다. 지금과 같은 루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매거진의 이전글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