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기 Jun 29. 2023

책임감과 유체이탈 화법

 과거 한 때 우리나라에 유체이탈 화법이란 말이 화자 된 적이 있었다. 유체이탈이란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유체이탈 화법이란 자신과 관련한 얘기를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남 얘기하듯 말하는 화법을 뜻한다. 보통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유체이탈 화법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자신의 판단에 대해 같은 사람인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비판하였다고 한다. 자신이 내린 지시가 아닌 마치 제삼자가 내린 지시인 것 처럼하여 그 책임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선조의 태도에 당시 신하들도 하루하루 긴장스런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최근 드라마 한 편을 보았다. 주인공이 직장 상사의 지시로 새로운 사업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시장 조사를 해 보니 해당 사업을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하지만 상사의 지시라 사업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사업을 성공시켜 보려 노력했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직상 상사의 지시는 사라져 버렸고 책임 공방은 주인공인 실무자에게 전가되었다. 직장상사는 해당 사업을 검토해 보라고만 했지 언제 진행하라고 했냐며 주인공에게 역정을 냈다. 그리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팀원들의 우산이 되어 주지 않고 마치 다른 팀의 팀장인 것처럼 주인공에게 폭우를 쏟아부었다.


 이런 일들이 과거의 역사 속에서만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현실에서도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조직에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앞서 언급한 유체이탈 화법부터 타인에게 질문의 형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법까지 다양하다. 해당 업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상대방에게 왜 일이 이렇게 되었냐고 물으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대게 어떤 조직이든 유체이탈의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보다 결국 책임지는 사람들이 마음의 고통을 받고 조직을 떠나게 된다.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게 남일이어서 괴로울 것도 없으나, 책임감을 가진 이들에게 모든 게 내 책임이어서 결국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다 마지막 수단으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결정을 하게 되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더의 판단은 중요하다. 과거 국내 대기업 회장 중 한 분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려는 임원을 가장 먼저 해고했다고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고 해결하는 사람과 마치 그 문제는 내 책임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이 둘을 판단할 리더가 없을 때 직원들은 그 누구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리더의 한 마디는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들의 판단은 기업 문화를 바꿀 정도로 무게감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리더와 함께하는 보통의 직장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꾸라지의 생존기술을 배우던지 아니면 행복의 나라로 떠나야 하는 것일까? 어려운 문제다. 다만 영화 스파이더 맨의 격언처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는데(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그전에 큰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주어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 스트레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