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아는 분과 부동산 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분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대해 말하며,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는 정책은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현재를 살고 있는 대다수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거기에 유명해지고 싶어지고, 권력이라 불리는 위치 에너지를 가지고 싶은 욕망까지 있다. 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인간에게 내재된 감정이므로 부인하기가 어렵다.
다만 본능과 욕망을 따르는 삶이 어떤가에 대해 생각은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는 수많은 광고가 범람하는 시대다. 광고의 매체가 텔레비전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우리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광고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욕망하라는 것이다.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것이 광고의 주요 메시지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욕망하는 정확히 모른 채 광고가 전달하는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착각하는 게 문제다.
어디 광고뿐이겠는가? 강연가라고 불리는 분들도 미디어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전파한다. 때론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단,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좀 더 있어 보이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매슬로우 인간 욕구의 최상단에 있는 자기실현욕구와 맞닿아 있다. 대부분 우리의 삶은 생존의 욕구, 안정의 욕구, 소속/관계의 욕구 정도에 만족하다 삶을 마감한다. 자아존중/존경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실현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로 자아실현을 이룬 사람들의 삶도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는 자신의 삶과 비교하면서 때론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나 역시 아직 자아실현의 욕구를 이루지 못했다. 나이 마흔이 넘어 겨우 생존 그리고 안정의 욕구까지는 가까스로 다다른 것 같다. 다만 아직 남은 욕구들을 이루지 못해서 인지, 아니면 생존 및 안정이 해결된 삶에 만족을 못해서인지 욕구불만의 상태에 종종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욕구를 충족했을 때 그 기쁨이 잠시였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욕구 충족을 위해 사막을 헤매는 나를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과연 욕구의 최종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 단계에 이르면 정말 더 이상의 욕구는 없을지 사뭇 궁금하긴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의 문제는 자아실현을 아직 못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무언가를 욕망하는 내 마음에 있지 않나 싶다. 욕구가 끝이 없다는 것은 채워지는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 입에 음식을 쑤셔 넣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심리적 허기로 인해 불필요한 살만 찌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며 사는 삶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다만 질문을 바꾸어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 포기할 기회비용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아이들과 거실에서 신문지를 펼쳐놓고 삼겹살을 먹는 것도 자아실현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