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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Jun 29. 2023

나만 불행한 것 같다고 생각될 때

 내 나이 만으로 마흔둘이다. 대학을 99년도에 입학하고 2007년에 2월에 졸업을 하였다. 졸업 후 여행사에 다니다가 뜻하는 바가 있어 공부를 위해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 해 원하는 기업의 채용공고조차 없어 다시 직장에 취업해야 했고 이듬해 재취업을 했다. 그로부터 16년 그 사이 다섯 군데 회사를 거쳐 지금 여섯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간 거쳐간 업무와 업계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패션 회사에서 영업을 하다가 소비재 회사에서 마케팅을 했고 지금은 데이터 관련 회사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나이 마흔이 넘은 시점부터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앞으로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분야에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터라 과연 내게 전문성이라는 것이 있는지 조차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한 회사에 오랜 기간 같은 업무를 하며 나름 전문성을 쌓아온 분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요즘은 데이터 분야로 좀 더 경력을 확장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래서 SQL, 파이썬, R, 파워BI와 같은 기존에 접하지 않았던 프로그램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데이터 전문 대학원 진학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그저 스마트폰 영상만 바라보는 내게 대학원 공부가 가능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게다가 컴퓨터 전공도 아닌 내가 그 분야로 가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사실 그동안 새로운 분야로 이직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최소한 나보다 경력이 짧은 사람들보다는 아는 게 더 많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팀장으로 업무를 할 때도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 보이지 않으려도 꽤나 노력을 했으나 아마 함께 일하는 후배들이 겉으로만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나의 과거와 미래를 바라볼 때 두려움이 들 때가 있다. 더 이상 앞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다시 뒤로 가고 싶지도 않은 이 상황에서 마치 절벽에 갇힌 듯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장마가 시작된 오늘 창 밖의 빗소리를 들으며 책 한 권을 읽었다. 한 직장에서 광고업무를 하며 쉰 살이 넘어 임원으로 퇴직한 어느 분의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며 위안이 되었던 것은 그분 역시 마흔 중반에 나와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셨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앞서 말한 대로 한 회사에서 한 직무를 오래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경력을 오래 쌓은 사람들은 어쩌면 마흔 쯤 되었을 때는 나름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편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러워하곤 했다. 이미 한 분야에 오래 일하며 많은 지식과 전문성이 쌓였고 회사 내에서도 위치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책 속에 나온 그분의 마흔 넘어 경험한 두려움에 대한 솔직한 경험담을 들으면서 나만 겪고 있는 어려움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일본 소설을 번역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는 말했다. 남들은 집에서 편하게 번역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프리랜서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다고 말이다. 누구나 알만한 책들을 번역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십 년 전과 동일한 번역료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고도 했다. 떡볶이와 자장면 값은 올랐지만 번역료는 여전히 그대로라고 말이다. 자신의 자녀 역시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끈덕지게 자리에 앉아 번역을 해야 하는 일의 특성과 자녀의 성향이 맞지 않아 추천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보기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며 일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 어느 일이나 나름의 어려움이 있음 알 수 있었다.  


 때로는 살다 보면 나의 삶보다 타인의 삶이 좋아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의 삶이 더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꽃길만 걷는 삶, 그런 것은 없는 것 같다. 각자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부함과 가난함과는 관계없이, 다만 세상에는 말하지 못할 아픔과 시련이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왠지 나만 힘든 것 같고 세상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소셜 미디어보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조금 더 솔직히 녹아져 있는 책 한 권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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