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책 한 권을 읽었다. 책 제목과 다른 내용에 조금 당황을 하였지만 그래도 삶에 보탬이 되는 책이었다. 책은 대기업에서 근무했던 전직 여성 임원이 직장 생활을 마치고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를 정리한 책이었다. 요즘은 꼰대라는 말 때문인지 직장 생활을 먼저 시작한 선배로부터 인생 조언을 듣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끔 이런 책들이 직장 생활에 대한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된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나. 힘들고 지칠 때 그들은 어떻게 그러한 시기를 통과했는지. 직장생활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그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자신의 꿈과 가정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책의 저자 역시 꼰대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한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았다.
직장 생활에 고민 많은 내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었던 부분은 대기업 부사장까지 오른 그에게도 어렵고 힘든 시기가 매 순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으며, 실제로 마흔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었다고 했다. 당시 회사에서는 1년만 쉬고 돌아오라며 휴직을 권했고, 그는 1년 후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그렇게 쉬면서 산티아고라는 순례길을 걸으며 그동안 지치고 힘들었던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고, 휴직 후 회사에 복귀해서 몇 년을 더 다니다가 나이 쉰이 넘어 회사를 떠났다고 했다. 나 역시 불혹이라는 마흔의 나이에 매일같이 흔들리며 회사를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이 책을 만났고 나의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약간의 위로를 얻었다.
저자는 책에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말하고 있다. 결국 그 답은 태도에 있다고 했다. 과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임원에서 장관까지 했던 한 분의 강연이 떠올랐다. 영어를 A부터 Z까지 숫자를 매긴 후 단어를 모두 더했을 때, ATTITUDE(태도)가 100점이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삶에서 태도가 그렇게 중요하다며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태도란 단어는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어떤 것이 좋은 태도일까? 과거 직장에서 좋은 태도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주말도 반납하고 회사와 국가의 발전에 헌신하는 것이 바로 좋은 태도였다.
태도를 언급할 때 기억나는 친구가 있다. 그는 나보다는 어리지만 항상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친구였다. 누구나 그가 하는 일이 과중하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는 불평 없이 그 모든 일을 해내곤 하였다. 나였으면 진작 짜증을 엄청 내거나 번아웃에 걸려 잦은 휴가를 냈을 법할 정도의 업무량이었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무리하지 말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마치 일이 체질에 맞는 사람인 듯한 태도를 보여 주였다. 한 때 나에게도 그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그처럼 오래 버티지 못했다. 첫 직장에서 매일 야근을 하며 일에 몰입했던 시절. 그러나 한두 해가 지나면서 일이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났고, 구체적인 보상 없이 책임만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가 서서히 군데군데 몸이 아파왔다. 병원을 전전했으나 약 먹을 때만 괜찮았고 약을 끊으면 다시 통증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마땅한 치료책 없이 몇 년을 통증을 친구 삼아 보냈다.
최근 나는 회사를 옮겼고 우연히 전 직장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오랜만에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었다. 한편으로 신기했고 대견했다. 역시 내가 약했던 거였어라는 생각을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야기가 한창 익어갈 무렵 최근 그가 허리 디스크 통증을 앓았다는 얘기를 꺼냈다. 아직 서른 초반인 그에게 이른 질병이었다. 나 역시 그 회사에서 일하면서 과도한 업무로 디스크 질환을 앓게 되었다. 그렇게 모임을 마치고 늦은 저녁 집으로 오면서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과연 직장에서 좋은 태도란 무엇일까? 아마도 그처럼 묵묵히 시키는 일을 해내면서 성과를 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 빠른 진급을 했고 회사로부터도 신임과 인정을 받고 있었다.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출퇴근 시간보다는 성과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성과를 내면서 너무 요란하면 안 된다. 너무 잘난 척을 하거나 동료들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내는 성과는 인정을 받기 어렵다. 그야말로 묵묵히 시키는 일을 잘해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이 마흔이 넘었고 나름 어느 정도 직급과 직책이란 걸 갖게 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태도만큼은 여전히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해 조금만 무리를 해도 몸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나의 한계가 100이라면 과거에는 120 또는 150까지 발휘하더라도 몸이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70 또는 80에 다다르기 전에 몸에서 먼저 신호를 준다. 너 지금 무리하고 있어. 조금만 더 무리하면 몸이 망가질 거야라고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낙제점을 면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체력으로 좋은 태도를 가질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다. 불과 며칠 전에도 다소 과중한 업무가 나에게 맡겨졌는데,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조금씩 입 밖으로 삐져나오는 불만을 통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앞으로도 나에게는 내 몸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업무보다 더한 업무가 주어질 것이다. 시킨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나는 마흔의 생존을 위해 이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했다. C.r.o.s.s.F.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