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공부 병행하기
"회사의 성장이 직원들에게는 좋기만 할까요?"
한 강연에서 들었던 질문이다. 질문의 뉘앙스로 보았을 때는 어딘가 안 좋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게 뭔지는 알지 못했다. 사실 자신이 속해 있는 회사가 성장하면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성과급을 더 받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회사의 인지도가 상승하면 나의 인지도도 함께 상승하는 것처럼 느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리가 생기고 승진의 기회를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회사가 성장한다고 모두 그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다니는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강연자 분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회사는 성장하는데 직원은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원래 새로운걸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뭐라도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말이다. 회사가 성장하는데 직원은 성장하지 않는다면, 결론은 조직을 떠나는 것뿐이다. 회사는 성장하면서 계속 새로운 역량을 직원들에게 요구하는데 그러한 능력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강연의 주된 내용이었다.
회사를 다니며 그런 분들을 여럿 보게 되었다. 열심히 회사의 성장을 위해 젊음을 바쳤는데, 회사가 커지면서 함께 커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같은 위치에 계셨던 분들 말이다. 세월이 지나도 그분들에게는 매니저의 자리 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후배가 그 자리에 오르거나 다른 조직에서 온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일들을 자주 보았던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조직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도 했고, 나의 미래도 저렇게 되는 거 아닌가 하며 우울해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아직 젊기에 미래를 단정 짓기는 너무 이른 것 같았다. 그러나 회사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나면 자기계발이란 것을 할 체력과 시간이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거의 매일같이 공부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했지만 단 한 번도 이틀 이상 그 계획대로 실천한 적이 없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책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아침에는 아직 잠이 덜 깨서 저녁에는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제대로 책을 펴고 끝까지 읽어보지를 못했다. 그렇게 매일 실패와 좌절 그리고 우울의 연속이었다.
회사 업무를 통해 성과를 내며 실무를 배울 수도 있었다. 사실 실무 경험은 개인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된다. 나 역시 책에서 배운 내용보다 실전을 통해 경험한 것들이 더 오래 남았고 실제 이직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실무경험은 제한이 있다. 직무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이 현재 속한 회사의 상황 속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실무경험을 쌓고 큰 성과를 내었다고 해서 그 경험을 다른 회사에서 그대로 적용하여 동일한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결국 모든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실무적 경험이 있어야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회사를 다니면서 이론적인 공부를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매우 요원한 일처럼 느껴진다. 내 경우에는 다행히 MBA에서 공부를 할 동안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여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일과 공부 외에는 가사와 육아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업무도 많았거니와 공부량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졸업한 분들 중에는 새벽에 공부하다가 우신 분도 있다는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자주 있었다. 매주 과제가 있었고, 2~3주마다 시험을 보았다. 시험도 배운 내용에 대해 5~8페이지 정도를 모두 영어로 쓰는 거여서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한 번은 너무 힘들어서 당시 들었던 과목을 수강 철회할까 생각했었다. 나는 토요일 아침 학교를 가야 했으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방문을 열며 말했다.
"왜 안가? 늦지 않았어?"
"너무 힘들어서 이번 과목은 수강 철회할까 하는데...?"
"미쳤어... 미쳤어... 한 과목에 100만 원 아니야?"
당시 아내가 '한 과목에 100만 원'이라는 말만 안 했어도 그 수업을 빼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100만 원이라는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해서 가방 들고 바로 학교로 갔었던 적도 있다. 그 이후로 수업을 들을 때마다 100만 원짜리 지폐가 눈앞에 아른거려 수강 철회는 꿈도 꾸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공부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과거 소프트 뱅크 손정의 사장의 강연을 들은 일이 있다. 그분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일주일 만에 한 학년씩 승급을 할 정도로 지독하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을 가고 사업을 하기 위해 일본에 돌아와서도 최선을 다해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몸이 아파 병원을 가게 되었는데, 얼마 못 살 거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너무 무리해서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살아계시니 잘 치료된 것 같다. (참고로 그 강연에서는 치료 과정은 소개되지 않았고, 본인이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는 내용만 나온다.) 나는 손정의 사장만큼은 아니지만, 누구나 본인이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간 죽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몸에 장기 하나를 떼내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매일 야근과 회식이 반복되는 삶에서 잠을 줄여가며 자기계발을 하는 것 자체가 수명을 단축시키고 몸을 매우 혹사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건강을 심하게 잃을 수 있다. 물론 자기계발 자체가 즐겁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여러모로 플러스 요인이 되겠지만, 조직에서 생존하기 위해 없는 시간 쪼개어해야 하는 자기계발의 경우에는 몸을 상하게 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공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과 공부를 병행할 때는 절대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일을 하며 공부를 할 때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일과 공부를 병행할 때는 공부의 목적을 뚜렷이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중간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다. 공부의 목적이 흔들려 중간에 포기하게 되면 공부한 내용은 어느 정도 남겠지만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을 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노력이 들어가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반드시 '왜?'라는 질문을 심도 있게 해 봐야 한다. '왜 공부하는가?' '왜 지금 시점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자기만의 확실한 답이 있어야 한다. 남들도 하니까. 앞으로 유망한 분야라서. 이런 이유로 공부를 하면 공부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 스스로 핑계거리를 만들 수 있다. '그 친구 요즘에는 부동산을 공부한다던데 나도 그거나 해볼까?' 또는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가 앞으로 가망이 없어진다는데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반드시 후회할 거야.' '내 인생에서 꼭 한 번 도전하고 싶은 분야였어.' '이 공부를 통해 뭔가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 보고 싶어'와 같은 나만의 '답'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자기 스스로를 잘 파악하여 공부의 주제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영어에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는 것 같은데 글로벌 시대라고 해서 영어를 꾸역꾸역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본인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공부하면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너무 멀리 보고 하는 공부는 지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30대에 은퇴 후를 생각해서 부동산 자격증을 따는 것에 대해 나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요즘 일반적인 회사들도 5년에서 10년 이후에 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는다.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무의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개인이 10년 후 미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3~5년 안에 본인이 도달하고 싶은 목표에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공부 자체에 목적을 두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드시 자격증을 따거나 졸업을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자격증과 졸업장은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므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실용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다 보면 공부의 재미를 잃을 수 있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계속 꾸준히 공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장하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즐거움은 어떤 목표를 - 예를 들면, 승진, 이직, 창업 등 - 두고 할 때보다 공부를 하며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고 느낄 때 더 많이 생긴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 내가 공부한 내용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전혀 쓸모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힘들게 일하며 자기계발을 할 때는 공부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반드시 누리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난 1년 6개월간 일과 MBA 수업을 병행하며 느꼈던 내용에 대해 적어 보았다. 사실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다면 각자 상황에 맞는 정답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든 완벽한 것은 없다. 그저 계속 넘어져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며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