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는 무게가 있다. 천 원짜리 지폐는 가볍고, 500원짜리 동전은 무겁다는 말은 아니다. 돈을 벌 때와 쓸 때 마음에 전해오는 무게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살 때 돈의 무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마트에 가서 4000원짜리 국산콩 두부가 아닌 1000원짜리 수입콩 두부가 손에 집힐 때 돈은 무겁게 느껴진다. 먹고 싶은 라면이 있지만, 그 옆에 4+1라면을 고민하며 집어 들 때도 돈의 무게는 무겁다. 반대로 마음 가는 대로 4000원짜리 국산콩 두부를 집고, 가격은 더 비싸지만 먹고 싶은 라면을 계산해도 부담이 전혀 없다면 돈은 가벼운 것이 된다.
돈을 벌 때도 돈의 무게가 다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일해도 생활비와 용돈을 제하고 나면 고작 10만 원 남짓 손에 쥐게 될 때가 있었다. 반대로 하루 8시간만 시간을 채우면 1년에 해외여행을 두 번 이상 가도 크게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각각 나에게 전해져 오는 돈의 무게가 전혀 달랐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 삶에서 돈이 항상 무겁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그 무게에 항상 짓눌려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육아휴직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다행히 육아휴직을 고민했을 때 돈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육아휴직 전에 각종 미디어에서 잘 나가는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의 인터뷰를 자주 보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외국계 회사에서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그들은 한반도 남쪽 섬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의 생존 방법은 '적게 벌고, 적게 쓰기'였다. 그들은 돈을 적게 버는 대신 시간과 여유를 얻었다며 행복해했다.
나는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돈과 시간을 양쪽 무게 저울에 올려놓고 생각해 보았다. 둘 중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저울은 점점 '시간'쪽으로 저울이 기울어져 갔다. 시간이 있으면 가족들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건강, 인간관계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 삶의 질이 지금보다는 몇 배는 더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휴직을 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일을 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끔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도 꺼내어 본다. 날씨가 좋으면 대낮에 산책을 하고, 몸이 찌뿌둥하면 언제든지 운동을 한다. 저녁에는 가족들을 위해 요리도 한다. 내가 바라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육아휴직 전 깃털처럼 가벼웠던 돈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다. 전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마트에 가서 고민하지 않고 물건을 집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은 많고 돈에 여유가 없으니 제품의 효용보다는 가격을 더 먼저 따지게 된다.
세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하는데, 그놈의 돈 때문에 혼란스럽다. '덜 벌고 덜 쓰면서' 살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쉽지 않다. 나 혼자만 살면 그렇게 하겠는데, 아이들이 있으니 더 어렵다.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 난 도무지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고 싶은 일을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 책을 찾아보았다. 해당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읽었다. 다들 돈은 되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덧붙인다. 돈은 되지 않는데, 시간과 여유가 많아져 삶의 질은 높아졌다고 한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요즘 삶의 질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돈을 못 버는 만큼, 아빠로서 경제적인 뒷받침과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조금은 무겁다.
서울에서 아빠로서 가사와 육아 그리고 경제적인 역할을 모두 균형 있게 잘 감당하려면 얼마의 돈이 있어야 할까? 그리고 시간은 어느 정도 필요할까? 내 안에 드는 한 가지 확신은 30대와 40대의 돈과 시간의 균형점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빠를 찾는 지금은 돈보다는 시간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 생각 덕분에 잠시 돈 걱정은 내려놓고 육아휴직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는 나이가 되는 40대가 되면 육아보다는 아빠로서 경제적인 역할에 더 충실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인생이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