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신뢰사회

by 노용기

“우리는 신뢰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한국에서 강연을 했던 알토 대학 부총장의 수업에서였다. 알토 대학 부총장인 하누 세리스토 교수님은 핀란드 사회의 특징에 대해 언급하며, 핀란드는 신뢰 사회이며 핀란인들은 서로 신뢰한다는 말을 하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의아했다. 한 사회 전체에 대한 정의를 너무 쉽게 내리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 대해 얘기할 때도 자주 머뭇거리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나를 울타리에 가두듯 한정 짓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정말 그런가?’ 스스로 의문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내가 본 그 사람의 모습이 참모습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에, 나는 타인에 대해 말할 때도 항상 “저는 그분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는 바를 이렇습니다.”라고 서두를 시작하는 편이다. 즉, 그 사람의 360도 다른 모습 중에 내가 본 한 측면에 대해서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한 사회에 대해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그의 말과 태도에 호기심과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에 어떤 외국인이 나에게 와서 우리나라에 대해 물을 때 나는 어떤 말로 대한민국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 문장으로 우리나라를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학창 시절 때 우리나라에 대해 배울 때는 이런 표현을 많이 썼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다.’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다.’

하지만 2016년 현재 우리나라를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 같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표현이 거부감이 없이 잘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세계화의 물결로 들어가면서 갑자기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 대신, 짧은 기간 경제 대국을 이룩한 역동적인 나라로 전 세계인들의 마음에 포지셔닝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한쪽에서는 ‘정말 우리가 다이내믹 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서로 몸싸움을 하고 청년들과 노동자들은 도심 한 복판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들이 다이내믹하긴 하지.'라는 다소 비아냥 섞인 목소리도 나왔던 것 같다. 이렇듯 한 사회를 한 단어로 그리고 한 문장으로 규정짓는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만약 “우리는 신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번만 들었다면, 나는 그냥 그 말을 한 개인의 의견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토 대학 부총장이 한국 방문 수업에서 했던 그 말을 나는 핀란드 현지에서 다른 교수들로부터 여러 차례 더 듣게 되었다. 한 사람이 말하면 그냥 한 개인의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말하면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그 이야기가 사실처럼 들린다.


알토 대학 부총장인 하누 세리스토 교수님은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는 신뢰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죠. 만약 초등학생 정도 되는 어린아이가 시골에 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핀란드에서는 그 아이 혼자서 터미널에 가서 표를 끊고 할머니 댁에 갈 수 있습니다. 만약 모르는 것이 있으면 옆에 있는 아저씨나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방향만 같다면 그들 중에는 그 아이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까요.”


나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생각해 보았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가 아이들만 시골로 보낼 수 있을까? 특히 그 아이들이 여자아이라면 어떨까? 물론 가능한 가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핀란드 부모들처럼 선뜻 그렇게 쉽게 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만약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혼자 보내더라도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든지, 계속 나에게 전화하며 위치를 알리라는 등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여러 차례 단단히 일러 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낼 것 같다.


나에게는 현재 6살 딸과 4살 아들이 있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내 시야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장난으로라도 갑자기 어디에 숨거나 숨바꼭질을 하지 말라고 엄하게 말하는 편이다. 만에 하나 내가 아이들을 시야에서 놓친 사이에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우리 아이들이 귀엽다고 지나가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머니에서 사탕을 한 움큼 주실 때가 있는데, 나는 그 사탕을 아이들에게 가지고 있으라고만 할 뿐 입에 넣어 주지는 않는다. 사탕을 먹고 아이들에게 충치가 생길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사탕 안에 혹시 다른 물질이 들어 있지 않을까 두려워서이다. 내가 과민한 걸까? 하지만 뉴스에서 흉흉한 일들을 접할 때 마다마다 나는 두 아이의 부모로서 한 없이 긴장되고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처음으로 서울에서 춘천에 계시는 외할머니 댁에 혼자서 간 적이 있다. 당시 성북역에서 춘천역까지 운행하는 통일호 기차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성북역까지 데려다주셨고 그다음부터는 나 혼자 춘천에 계신 할머니 집까지 갔다. 나는 가끔 내가 여자아이였어도 우리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보내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요즘 길을 걷다 우연히 동사무소 앞 알림판에 우리 동네에 거주하는 성범죄자 신상이 공개된 내용을 볼 때마다 슬프지만 사람들에 대한 나의 신뢰 범위는 점점 줄어든다.


내가 핀란드에 갔을 때 일이다. 동기 중에 한 분이 수업이 없었던 주말에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과 함께 갔었던 국립공원이 좋았다며 큰 버스를 대절하여 동기들 전체를 데리고 같이 간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서 우연히 현지 핀란드 여고생 두 명을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둘이서만 왔니?"

"아니요. 남자친구와 같이 왔는데, 걔네들은 오늘 아침에 다른 일정이 있어 먼저 떠났어요."


여자 아이 둘은 호기심 어린 나의 질문에 편안한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나는 여고생 두 명이서 부모님도 아닌 남자친구와 캠핑을 왔다는 것에 짐짓 놀라면서도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부모님은 걱정 안 하시니? 부모님이 허락해 주신 거야?"

두 여고생을 서로를 바라보며 짧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친구들하고 자주 오는데... 부모님들은 별로 걱정 안 해요."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익기 시작한 고기와 소시지들을 건넸다. 그들은 내가 주는 음식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먹었다. 그리고 한 두 시간 정도 함께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덧 시간이 되었다며 짐을 챙겼다. 그리고 집에서나 쓸만한 자기들 몸만 한 큰 매트리스를 둘둘 말아 가슴에 안은채 유유히 숲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게 의문이 들었다. 내 딸이 고등학생이 되면 저들처럼 자유롭게 1박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수 있을까? 그것도 남자친구와 함께... 저 두 여고생의 부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뭘 믿고, 채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을 이 깊고 깊은 숲 속으로 캠핑을 가도록 허락했을까? 그 순간 알토 대학 부총장인 하누 세리스토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해 준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핀란드에서는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에 초등학생 어린아이들도 시골에 있는 할머니를 보러 혼자서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기.


나는 짧았던 두 여고생과의 만남을 통해 핀란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구축이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부모가 아이들을 신뢰하지 않고, 여행길에 만나게 될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여자 아이 둘이 여행하는 것에 대해 흔쾌히 허락을 해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몇 달 전 나는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갔었다. 짐이 많았던 우리는 그곳에서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가 도착하자 나는 택시 기사에게 트렁크를 열어 달라고 요청하고, 짐을 다 실은 다음 택시를 탔다. 그때 택시 기사로부터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내려서 짐을 실어 주고 싶었는데, 여기서 내가 내렸다가 그사이 혹시 택시 강도가 내 차에 올라타 차를 가지고 도주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사실 나는 트렁크만 열어 주면 됐었기 때문에 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한 말로 인하여 그 나라에서 여행을 하는 내내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가방을 꼭 끌어안고 트렁크 손잡이를 꽉 쥐며 긴장감을 놓치 못했다.


몇 해 전 한 경영잡지에서 ‘신뢰 비용’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사업상 관계에서 서로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 비용이라는 것이 발생한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매자가 제품을 공급하는 사람을 믿지 못해 해당 제품이 각종 시험을 통과했다는 증명서를 요청하고, 혹시 제품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 해 손해 배상 보험에 들어 있다는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종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제품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구매자는 공급자를 바꾸고 새로 선정되는 공급자에게는 그 전보다 더 강화된 추가 증빙을 요구한다. 이 모든 과정들은 공급자와 구매자에게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발생하게 한다. 결국 이러한 비용들은 가격에 포함되어 최종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각종 증빙 제출과 그로 인한 비용들이 신뢰가 바탕이 되었다면 없어도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이러한 신뢰 비용이 경영에서 뿐 아니라 나의 삶에서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사회와 사람들을 신뢰한다면 나의 ‘근심’을 통해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더 넓을 세상을 경험하며 자립심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나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내가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씌웠던 차도르를 벗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이 이 사회가 두렵다. 그래서일까? 아마 그 차도르는 나부터 벗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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